‘시크릿 시네마’는 상영하는 장소가 비밀인 영화관이에요. 연간 작게는 2편, 많게는 5편 정도의 영화를 개봉하는데 매 영화마다 다른 곳에서 상영하죠. 또한 영화를 예매할 때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어디서 영화를 볼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예매 후에는 영화관 주소가 아니라 지하철역 등의 특정 위치를 미팅 장소로 공유해주고요.
이렇게까지 장소를 숨길 정도로 특별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도 않아요. 최신 영화를 공식 개봉 전에 미리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독점 판권을 가진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아니에요. 1985년 개봉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77년 개봉한 <스타워즈(Star Wars)>, 2001년 개봉한 <물랑 루즈(Moulin Rouge)> 등 유명하지만 십수 년도 더 된 오래된 영화들을 주로 상영해요.
게다가 영화 티켓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티켓 옵션과 요일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데, 시크릿 시네마의 티켓 가격은 일반적인 영화관 대비 3배 이상 비싸요. 그럼에도 집객력은 영국 영화 산업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막강해요. 이쯤되면 시크릿 시네마가 관객들을 불러모으는 비밀이 궁금해지는데요. 도대체 시크릿 시네마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시크릿 시네마 미리보기
• 숨어 있어 더 가보고 싶은 영화관
• #1. 예매와 영화 사이 - 준비한 만큼 설레는 영화
• #2. 입장과 영화 사이 - 참여한 만큼 즐거운 영화
• #3. 연극와 영화 사이 - 몰입한 만큼 보이는 영화
•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크릿 시네마다움
같은 공연장에서 연극을 관람했는데 모두가 다른 연극을 보고 나왔어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지만 뉴욕에서는 현실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 중에 같은 연극을 본 사람은 확률적으로 0에 수렴해요. 연극을 극장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연극은 앉아서 봐야 한다는 상식을 깼기 때문이죠.
연극의 틀을 깨기 위해 <슬립 노 모어>는 공간부터 바꿨어요. 전형적인 형태의 공연장이 아니라 호텔을 공연장으로 활용해요. 공연이 펼쳐지는 곳은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인데, 실존하는 호텔을 공연장으로 개조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 형태의 무대를 만들고 신비스러운 스토리를 부여하기 위해 호텔의 공간 구조를 차용하면서 가상으로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래서 연회장, 로비, 객실 등으로 구성된 1층부터 5층까지의 호텔 공간 곳곳이 무대죠. 배우들은 정해진 무대에서 혹은 무대와 무대를 넘나들며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무대를 옮겨 다니며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엮어내거나 특정 배우를 따라다니며 연극을 관람할 수 있어요.
또한 <슬립 노 모어>는 정해진 관람 방식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정했어요. 관객들은 <슬립 노 모어>에서 제공하는 가면을 쓰고 입장해야 하고 공연 내내 가면을 벗으면 안 돼요. 고정된 무대와 좌석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 집중력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관람 집중력도 떨어질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장치이자, 고객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도구예요. 여기에 관객들 간에 말하지 않거나 배우를 방해하지 않아야 하는 규칙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뿐 아니라 공연장 위치도 본류에서 벗어나 있어요. 보통의 경우 뉴욕에서 연극 공연장이 모여 있는 곳은 브로드웨이(Broadway)나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예요. 하지만 <슬립 노 모어> 공연장은 뉴욕의 첼시(Chelsea) 지역에 위치해 있어요. 이 곳에 방치된 물류 창고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쓸모가 없어진 공간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꿨어요. 브로드웨이처럼 극장들이 모여 있을 때 생기는 집객력보다 관객들을 모여들게 하는 상상력의 힘에 무게중심을 둔 거예요.
연극계를 들썩이게 한 <슬립 노 모어>를 만든 공연 프로덕션은 펀치드렁크(Punchdrunk). 런던에 본사를 둔 공연 프로덕션이기도 하고, 런던은 뉴욕과 함께 연극과 뮤지컬 산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기도 해서 런던에서도 <슬립 노 모어> 공연을 볼 수 있을거라 기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슬립 노 모어>는 런던에서는 공연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아쉬움을 달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런던에는 영화같은 연극이자, 연극같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가 있기 때문이죠.
숨어 있어 더 가보고 싶은 영화관
시크릿 시네마는 상영하는 장소가 비밀인 영화관이에요. 연간 작게는 2편, 많게는 5편 정도의 영화를 개봉하는데 매 영화마다 다른 곳에서 상영하죠. 또한 영화를 예매할 때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어디서 영화를 볼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예매 전에는 런던의 1, 2존 이내의 장소라는 정도의 가이드라인만 공개하고, 예매 후에는 영화관 주소가 아니라 지하철역 등의 특정 위치를 미팅 장소로 공유해주고요. 가상의 이름을 붙인 장소를 공개하지만, 지도에서 검색이 안되는 곳이어서 예매를 하더라도 여전히 영화 보는 장소를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까지 장소를 숨길 정도로 특별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도 않아요. 최신 영화를 공식 개봉 전에 미리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독점 판권을 가진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아니에요. 1985년 개봉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77년 개봉한 <스타워즈(Star Wars)>, 2001년 개봉한 <물랑 루즈(Moulin Rouge)> 등 유명하지만 십수 년도 더 된 오래된 영화들을 주로 상영해요.
게다가 영화 티켓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티켓 옵션과 요일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데, 가장 싼 티켓이 45파운드(약 67,500원) 정도이고 비싼 티켓은 115파운드(약 17만 2,500원)가량해요. 런던에 있는 보통 영화관의 일반관이 15파운드(약 22,500원), 아이맥스나 4DX 등의 특수관이 20파운드(약 30,000원) 수준의 가격대임을 고려하면 시크릿 시네마의 티켓 가격은 3배 이상 비싼 셈이에요.
장소도 알려주지 않고, 영화도 특별하지 않으며, 영화 티켓 가격도 비싸지만 시크릿 시네마의 집객력은 막강해요. 2014년 7월과 8월에 상영한 <백 투 더 퓨처>는 8만 명, 2015년 6월부터 8월까지 상영한 <스타워즈>는 10만 명, 2017년 2월부터 4월까지 상영한 <물랑 루즈>는 7만 명이 봤어요. 이 정도의 집객력은 영국 영화 산업에 영향력을 미치는 규모예요. <백 투 더 퓨처>는 시크릿 시네마에서 상영을 개시하자 4시간만에 4만 2,000장의 티켓이 팔려 신기록을 세웠고, <스타워즈>와 <물랑 루즈> 등 수십 년 된 영화가 영국 박스 오피스 10위권에 재진입해 상영 기간 동안 자리를 지켰을 정도예요.
이쯤되면 시크릿 시네마가 관객들을 불러모으는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시크릿 시네마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인조 인간인 리플리컨트(Replicant)와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는 특수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사이의 추격전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1982년에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보면서 시크릿 시네마의 차별점이 무엇인지 알아볼게요.
#1. 예매와 영화 사이 - 준비한 만큼 설레는 영화
영화 티켓을 예매하면 이메일이 와요. 예매 확인증이 아니라 초대장에 가깝죠. 영화를 예매했으니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로 초대한다는 의미에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웹사이트 링크와 로그인할 수 있는 암호를 알려주는 거예요. 링크를 클릭하면 미래 사회의 인조 인간 스토리를 다루는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를 반영한 웹사이트로 연결돼요. 웹사이트 이름도 미래스러운 ‘라이브 유토피아(Live Utopia)’고요.
영화를 예매해도 영화관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팅 장소가 캐닝 타운 역이라는 내용만 알려줄 뿐입니다. 영화 상영 장소인 ‘월드 터미너스’는 임시로 부여한 건물명으로 지도에서 검색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시크릿시네마
영화를 예매하면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로 초대하는 안내 메일이 옵니다. 로그인할 수 있는 암호를 알려주며 접속해보고 싶은 심리를 자극합니다. ©시크릿시네마
온라인 사이트에서 개인 아이디를 만들고 나면 보안 검사를 해야 해요. 예매자들을 리플리컨트와 블레이드 러너 사이에 있는 시민이라고 가정하고, 시민으로서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3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물어요.
‘길거리에서 소녀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길거리 노숙자가 호스텔에 묵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하는데, 이미 다른 행인이 그에게 돈을 준 걸 봤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하는 회사에서 인조 인간의 본분을 어기고 인간 세계를 넘보는 것으로 의심되는 리플리컨트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객관식 질문에 답하고 나면 예매자들에게 캐릭터가 부여돼요. 보안 검사는 재미 삼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해요. 문답을 통해 ‘유토피아 앰배서더(Utopia Ambassador)’, ‘유토피아 테크니션(Utopia Technician)’ 등 9가지의 캐릭터 중에 하나가 정해지는데요. 예매자들은 시크릿 시네마에 가서 부여된 캐릭터로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할로윈 파티에 갈 때 캐릭터를 정해 꾸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품과 분장 도구를 준비하죠.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시크릿 시네마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은 분위기에 뒤처지지 않으려, 시크릿 시네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분위기를 알기에 준비물 안내를 보며 캐릭터를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해요. 영화 보러 갈 준비를 하는 과정 자체가 관객들에게 재미와 설렘을 주는 또 하나의 콘텐츠인 셈이에요.
보안 검사를 마치고 나면 9가지 캐릭터 중에 하나의 캐릭터가 부여됩니다.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관련 제품들을 구매하는 등의 준비를 합니다. ©시크릿시네마
물론 시크릿 시네마가 준비물 가이드라인만 제공하고 빠질 리 없어요. 친절하게도 라이브 유토피아 사이트에서 캐릭터별로 그에 어울리는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죠. 코트, 자켓, 타이, 우산, 안경 등의 소품을 각 캐릭터별로 20여 종씩 제안하는데 유토피아 앰배서더의 경우 소품들의 가격이 2~48파운드(약 3,000~7만 2,000원) 사이이며, 평균 가격은 20파운드(약 3만 원) 정도예요. 다른 캐릭터들도 유사한 수준이고요. 이를 통해 시크릿 시네마는 관객들이 영화관에 오기 전부터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온 후부터 부가 수익이 생기는 보통의 영화관들과는 출발점부터 달라요.
#2. 입장과 영화 사이 - 참여한 만큼 즐거운 영화
영화 예매 시간에 맞춰 미팅 장소인 캐닝 타운(Canning Town) 역에 도착하면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져요. 역 곳곳에 미래 시민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동행들을 기다리고 있고, 특수 경찰 분장을 한 스태프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은근슬쩍 안내하죠. 굳이 스태프들에게 물어보지 않더라도 코스프레한 무리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예매할 때 알려준 가상의 장소인 ‘월드 터미너스(World Terminus)’ 간판을 찾을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미팅 장소에 도착하면 <블레이드 러너> 영화 속 등장 인물들로 코스프레한 관객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스태프들 역시 영화 속 등장 인물 차림으로 관객들을 안내합니다. ©시티호퍼스
드디어 알게 된 영화관에 들어가는 과정도 까다로워요. 스태프들은 관객들을 환영하기 보다 수색하는 듯해요.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출력하려면 얼굴이 나온 사진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신분증을 검사하는 것처럼 티켓에 나온 사진과 대조하며 본인 확인을 하거든요. <블레이드 러너>에서 특수 경찰들이 리플리컨트를 색출하기 위해 보안 검사를 하는 과정을 입장 절차에 반영한 거예요.
<블레이드 러너>에서 특수 경찰들이 리플리컨트들을 색출하기 위해 보안 검사를 하듯, 스태프들은 관객들을 검문한 후 입장시킵니다. ©시티호퍼스
<블레이드 러너>에 국한된 설정이기 때문에 시크릿 시네마의 모든 영화의 입장 절차가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영화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요. 시크릿 시네마 영화관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어요. 권고 사항 정도가 아니라 입장할 때 스마트폰을 밀봉하게 하죠. 대기업들이 기밀 유출 등의 이유로 방문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보다 더 철저할 정도예요.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시크릿 시네마의 컨셉을 강화하고 관객들이 영화관에서의 경험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려는 목적이 더 커요.
영화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밀봉해야합니다. 또한 사물함에 짐을 보관할 수도 있어 관객들은 영화관에서의 경험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영화관에 들어서면 영화 속 장면을 구현한 거대 세트장이 펼쳐져요. 중앙을 광장처럼 만들고 그 주변으로 노점상처럼 식당과 바 등이 두 개 층에 걸쳐 있어요. 미래 사회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 <블레이드 러너> 영화처럼 세트장도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중앙 광장에는 계속해서 인공비를 뿌리죠. 노점상은 영화 속에 등장한 포장마차 거리를 연상하게끔 만들었어요. 또한 한쪽의 큰 모니터에서는 리플리컨트가 침입했다는 속보 등 영화와 관련한 내용들이 중간중간 나오고요.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죠.
영화관에 입장하면 영화 속 장면을 구현한 세트장이 펼쳐지고 관객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경험합니다. ⓒSecret Cinema
영화 상영은 8시 반 정도에 시작하는데 입장 시간은 6시 반 전후예요. 2시간가량을 이 세트장에서 보내는 거예요. 저녁 식사 시간대여서 관객들은 핫도그, 햄버거, 국수, 만두 등을 파는 15여 개의 식당과 협찬사인 아사히 맥주의 팝업 스토어에서 식사와 음료를 즐겨요. 영화를 보러 온 거의 모든 고객들에게 식음료를 추가적으로 판매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보통의 영화관에서 팝콘과 음료로 매점 수익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객단가에서도 차이가 나죠. 또한 소품과 분장 도구들을 파는 매장도 있어 사전 준비에 소홀했지만 파티를 즐기고 싶은 고객들은 현장에서 제품들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어요.
시크릿 시네마의 세트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에요. 그들은 세트장 곳곳에서 관객들의 흥을 돋우어요. 블레이드 러너가 리플리컨트를 쫓으며 추격전을 벌이는 등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하기도 하고, 미니 콘서트를 열어 공연을 하기도 하며, 댄스 타임 등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해요. 1,000여 명의 관객들은 방관자처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만든 생기에 열기를 더해요. 아직 영화 상영은 시작도 안했는데, 관객들은 이미 영화관에서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죠.
영화가 끝나면 배우들이 관객들을 배웅합니다. 입장할 때는 영화 속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의심의 눈초리로 관객들을 대했지만, 퇴장할 때는 친절한 미소로 인사합니다. ©시티호퍼스
#3. 연극와 영화 사이 - 몰입한 만큼 보이는 영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영화 안에 있는 것입니다.”
(Instead of watching a film, you essentially are in the film.)
시크릿 시네마의 창업자 파비엔 리갈(Fabien Riggall)의 설명이에요. 영화를 보기 전에 세트장에서의 경험만으로도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영화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영화 상영 방식의 틀도 깼어요.
상영 시간이 되면 스태프들이 축제에 빠져있는 관객들을 영화를 볼 수 있는 객석으로 안내해요. 객석은 가설물로, 임시로 설치해 만들었어요. 심지어 스크린 옆에도 가설물이 설치되어 있고요. 영화관이 아니라 스크린이 있는 공사장처럼 생겼어요. 보통의 영화관보다 좌석이 불편할 수밖에 없고, 스크린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구조죠. 시크릿 시네마의 가장 싼 티켓 가격이 일반 영화관에서 가장 비싼 VIP관 티켓 가격보다 1.5배 정도 높은 걸 감안하면 시설이 열악해 보여요.
하지만 티켓 가격엔 편안한 좌석이 아니라 입체적 관람을 위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영화가 시작되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벌어지죠. 영화 관람을 방해할 것만 같았던 스크린 옆의 가설물이 가설 무대로 바뀌며 배우들이 영화 장면에 맞춰, 혹은 카메라와 스크린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프레임 밖 상상의 장면들을 연극으로 재현해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이라면 가설 무대에서는 영화에 담겨 있지 않은 문 밖의 상황을 배우가 연기하고 그 연기에 연결되며 영화 속 스크린에서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와요. 또는 주인공이 시장에 간 장면이라면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은 시장의 풍경을 가설 무대 주변에 펼쳐내죠. 입체적 관람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영화 속 장면들을 가설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건 기본이고요. 2D의 영화를 또 다른 형태의 3D로 구현해낸 셈인데, 3D 영화보다 더 환상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해요.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 티켓 가격은 3개의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전체 좌석의 약 10%를 차지하는 가장 비싼 115파운드(약 17만 2,500원)짜리 티켓의 경우 지정 좌석에다가 음식과 음료 구매권 등이 포함되어 있어 논외로 하더라도, 45파운드(약 6만 8,000원)의 가장 낮은 등급의 티켓과 55파운드(약 8만 3,000원)의 중간 등급 티켓 가격의 차이는 스크린 밖의 연극인 프리미엄 스크리닝 경험을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거예요. 가장 낮은 등급의 객석에서도 프리미엄 스크리닝 경험을 할 수는 있지만, 일부 장면에 국한되어 있으니까요.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영화같은 연극이자 연극같은 영화가 끝나면, 여운이 남는 관객들을 위해 세트장이 클럽처럼 바뀌어요. 야식으로도 어울리는 음식과 주류를 파는 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고 있다가 영화가 끝나면 다시 관객들을 맞이하고, 관객들은 세트장에서 리듬을 타며 축제의 끝자락을 붙잡죠.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은 애프터 파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운영해 티켓 가격이 평일보다 20% 이상 비싸요.
관객들이 영화관에 오기 전에는 코스튬으로, 영화를 보러 온 후에는 식음료로 추가 매출을 올렸는데,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야식으로 매출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거예요.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관객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시크릿 시네마를 선택하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크릿 시네마다움
시크릿 시네마는 창의적이면서도 전략적 접근이 돋보이는 영화관이에요. 하지만 창업자 파비엔 리갈이 처음부터 현재 모습의 시크릿 시네마를 기획하고 영화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2003년에 ‘퓨처 쇼츠(Future Shorts)’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어요. 작품을 만들었으나 상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작은 영화 제작자들의 현실이 안타까워 그들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만든 이벤트죠.
그는 퓨처 쇼츠를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이를 진화시켜 2005년에 ‘퓨처 시네마(Future Cinema)’를 만들었어요. 퓨처 시네마는 영화 관람과 경험을 결합시킨 라이브 공연이에요. 장소를 숨기는 것을 제외하면 시크릿 시네마와 유사한 구성으로, 시크릿 시네마의 모태가 된 프로젝트죠. 그가 2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세상에 선보인 것이 시크릿 시네마예요.
2007년에 시크릿 시네마에서 처음 상영한 작품은 <파라노이드 파크(Paranoid Park)>. 관객수는 400여 명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시크릿 시네마의 기대치를 높여가며 영국 영화 산업의 판을 흔들 정도로 키워냈죠.
오래된 영화를 심폐소생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서 하더라도 관객들이 모여들 만한 인기인데 시크릿 시네마가 사업 확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리 없어요. 똑같은 모델을 복제해 지역을 확장하며 영화관 수를 늘려나가는 것이 예상 가능한 성장의 방향이지만, 파비엔 리갈이 그려가는 성장 시나리오엔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어요.
그는 규모의 확장보다는 컨셉의 강화를 택했어요. 영화관의 장소뿐만 아니라 영화 제목조차도 알려주지 않는 ‘시크릿 시네마 텔 노 원(Secret Cinema Tell No One)’을 만들어 시크릿 시네마보다 더 신비스러움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이 강한 영화를 상영해 영화 마니아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켰죠.
또한 더 큰 규모로 시크릿 시네마를 키우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관객들이 시크릿 시네마를 더 친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더 작은 규모의 ‘시크릿 시네마-엑스(Secret Cinema-X)’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했어요. 물론 예술 영화 중심의 시크릿 시네마 텔 노 원도 엑스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나갔고요.
이렇게 시크릿 시네마답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이 엄습한 거예요.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던 라이브 이벤트라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어요. 매출은 2019년에 1천 6백만 파운드(약 240억 원)였던 매출은 2020년에 610만 파운드(약 91억 원)으로 뚝 떨어졌어요. 2021년에는 45만 파운드(약 6억 7천만 원)까지 급감했고요. 3년간 세전 손실이 1천 2백만 파운드(약 180억 원)이었죠.
위기 탈출을 위해 시크릿 시네마는 M&A로 활로를 모색해요. 2022년 9월에 미국의 온라인 티켓 판매 플랫폼 업체인 투데이틱스(Todaytix)에 시크릿 시네마를 매각한 거예요. 투데이틱스의 인수 금액은 약 1억 달러(약 1,300억원). 인수합병 이후 방향성은 기존과는 달라졌어요. 2023년부터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죠. 또한 한정된 기간이 아니라 상설로 진행하는 공연도 만들 예정이고요.
성장 전략이 수정되면서 시크릿 시네마 텔 노 원과 시크릿 시네마-엑스는 운영을 중단했어요. 시크릿 시네마다움이 무뎌지긴 했지만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주인공이 위기를 겪지만 결국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영화가 흥미진진하듯이, 시크릿 시네마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겪게된 뜻밖의 변화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에요. 위기를 모면한 시크릿 시네마는 또 어떤 시나리오를 이어 나갈까요. 시크릿 시네마가 변화된 다움으로 연출해 나갈 다음 장면이 궁금해집니다.
Reference
• 맥락을 팔아라(정지원/유지은/원충열 지음, 미래의창)
•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전윤경 지음, 스리체어스)
• This company makes millions showing movies you’ve seen already, CNN
• [디자인을 캐스팅한 박스 오피스] 판타지를 현실로 불러온 비밀 영화관, 시크릿 시네마, 월간 디자인
• Secret Cinema’s wild, immersive screenings, Juliet Bennett Rylah, The Hustle
• Secret Cinema’s new owners want to be the Netflix of live events, Mark Sweney,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