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브랜드도 예술이 됩니다

무브먼트랩

2022.05.18

파리의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장소입니다. 유서 깊은 이 곳을 1993년부터 10여년 간 보수해 지금과 같이 유려한 공간으로 업그레이드 시켰죠. 천장을 덮은 화려한 유리 돔과 거대한 면적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 압권이라 파리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랑 팔레가 공항으로, 카지노로, 쇼핑센터로, 심지어는 해변으로 변신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파리 패션 위크 기간에 ‘샤넬(Chanel)’ 패션쇼가 열릴 때입니다. 2019년 타계한 패션계의 전설이자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한계 없는 상상력으로 그랑 팔레의 공간을 변신시켰죠.


전시나 이벤트가 없는 그랑 팔레의 평소 모습입니다. ⓒsottolestelle


샤넬 오뜨 꾸뛰르 F/W 2017/2018 패션쇼에는 그랑 팔레 안에 에펠탑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Vogue


샤넬 S/S 2019 패션쇼에서는 인공 해변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Harper’s BAZZAR


이런 압도적인 비주얼은 샤넬 패션쇼의 아이콘이지만, 패션쇼에 힘을 주는 건 샤넬뿐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 잡고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창의성을 증명하기 위해 패션쇼에 신경을 씁니다. 패션쇼는 그 시즌의 신상품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광고판’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전시적인 요소가 필수인거죠.


특히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들의 패션쇼가 몰려 있는 세계 4대 패션 위크는 주목도가 가장 높습니다. 패션 위크는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되지만 그 중에서도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패션 위크가 세계 4대 패션 위크로 불려요. 1~3월에 F/W 컬렉션을, 8~10월에 S/S 컬렉션을 선보이며 정기적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죠. 그 시즌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패션 위크는 패션계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일반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홍보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그런데 이런 쇼의 역할이 꼭 패션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죠. 리빙 분야에도 이런 패션쇼의 역할을 하는 리빙 편집숍이 있어요.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에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는 ‘무브먼트랩(Movement Lab)’이에요. 무브먼트랩은 패션쇼가 패션에 대한 관심을 정기적으로 유도하고 트렌드를 제시하는 것처럼 리빙쇼(Living Show)를 통해 가구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움직임을 만드는 실험실 같은 곳이죠.


무브먼트랩 부산 플래그십 스토어는 해운대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달맞이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진성훈


무브먼트랩은 부산 매장을 시작으로 경기도 의왕시에 두 번째 매장을 냈는데, 두 매장을 합쳐 매월 약 2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갑니다. 가구가 가격대도 높고 구매 주기도 긴 고관여 제품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 평균 600~700명의 방문객 수는 적은 숫자가 아니죠. 그렇다면 무브먼트랩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객들이 가구를 중심으로 한 리빙 편집숍에 방문하게 만들고, 또 가구를 구매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곳에 가고 싶다, 가구 살 일이 없어도

패션쇼에서 영감을 받아 리빙쇼를 추구하는 무브먼트랩은 ‘시즌제 전시 판매’라는 개념을 도입했어요. 매장에 전시 공간과 판매 공간을 둘 다 갖추고 운영하면서 6개월마다 전시의 테마를 바꿉니다. 그리고 테마에 따라 10~30개 브랜드들과 협업해 전시를 꾸려나가요. 하나의 시즌 테마에 대해 각 브랜드의 관점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전시에 참여한 브랜드들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이처럼 브랜딩과 세일즈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판매를 위한 편집에만 초점을 맞추는 여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과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무브먼트랩의 시즌 전시는 2019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전시의 테마는 편집숍의 관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시즌별로 변화하며 재방문을 이끌어 냅니다. ⓒ 무브먼트랩


물론 전시를 한다고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무브먼트랩은 테마 선정, 공간 구성, 브랜드 선정 등에 공을 들입니다. 우선 ‘Green Stain(푸른 얼룩)’, ‘Humble Beauty(겸손한 아름다움)’, ‘Exotic Sense(낯섦)’ 등 감각적인 주제를 선정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이렇게 테마가 바뀔 때마다 공간 구획을 새롭게 하고, 그 테마와 접점이 있는 브랜드들로 라인업을 구성합니다. 가령 ‘푸른 얼룩’을 테마로 한 시즌에는 플랜테리어 그룹인 ‘스튜디오 콩테’, 도자기 브랜드 ‘무자기’ 등과 협업해 각 브랜드의 관점으로 시즌 테마를 해석한 결과물을 매장 곳곳에 전시하는 식입니다.




푸른 얼룩 시즌 전시에 참여한 도자기 브랜드 ‘무자기’는 푸른색의 고려 청자를 모티브로 한 에디션이 돋보일 수 있도록 그리너리를 구성했습니다. ⓒ진성훈


또 다른 도자기 브랜드 ‘커먼플래닛’은 재료와 틀을 같이 디스플레이하여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형상화했습니다. ⓒ진성훈


테마별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는 곳이 2층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각 브랜드마다 전시 테마를 해석한 결과물이 제품화되어 진열됩니다. 무브먼트랩이 푸른 얼룩이라는 테마를 제시하면 각 브랜드는 이를 각자의 해석과 관점이 담긴 제품으로 구현합니다. 오로지 무브먼트랩에서, 전시 기간에만 구매할 수 있는 ‘푸른 얼룩 에디션’을 선보이는 거죠. 예를 들어 볼게요. ‘무자기’는 백자 기반의 하얀 그릇이 시그니쳐인 브랜드인데, 푸른 얼룩 시즌에 참여하면서 하얀 그릇이 아닌 푸른빛의 고려 청자를 모티브로 한 에디션을 판매했습니다. 한정적인 전시 기간과 한정적인 제품 진열로 희소성을 부여하니, 고객이 무브먼트랩을 찾아 올 가치가 충분해집니다.



그곳에서 사고 싶다, 전시라 할 지라도

무브먼트랩은 테마만큼이나 공간의 감도도 높습니다. 해운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매장 위치, 개성을 가진 감각적인 제품 진열, 테마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공간 구성 등 모든 요소들이 공간감을 높이는데, 이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게 공간의 ‘사치스러운’ 활용입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공간의 의도적 비효율을 추구하죠. 이렇게 넘치는 빈 공간은 진열되어 있는 요소들에 대한 주목도를 높게 하고, 고객이 여유를 갖고 테마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틈을 줍니다. 하지만 공공 갤러리가 아닌 이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그렇다면 무브먼트랩은 어떻게 돈을 벌까요?


우선 전시에 참여하는 브랜드로부터 입점료를 받고,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받습니다. 브랜드의 입점료는 최소한의 하방 지지를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익 구조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구가 대표적인 고관여 상품이기 때문이죠. 가구는 가격대도 높고,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이 아닙니다. 결혼, 이사 등 특정한 상황에서 구매를 고려하는 상품이라 구매 전환율이 높지 않습니다. 구매 목적이 아니라 전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무브먼트랩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딜레마를 풀었습니다. 고객 접점을 넓히기 위해 구매 문턱이 낮은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들을 적극적으로 입점시키기도 하고, ‘오디너리핏(Ordinary.Pit)’이라는 카페를 두어 가구를 사지 않더라도 고객이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형태적으로는 보통의 편집숍이나 복합문화공간과 같을지 몰라도, 안을 들여다보면 차별점이 보입니다. 소품 브랜드나 카페 메뉴 등도 시즌 테마에 맞춰 변경하거나 개발해, 그 때가 아니면 사거나 맛볼 수가 없는 거죠. 단순히 고객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넘어 카페 역시도 시즌 테마 전시의 일부가 되는 셈입니다.


문턱을 낮추는 것도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구를 중심으로 한 매장이니 가구 판매를 늘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브먼트랩은 ‘클럽 무브먼트’라는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런칭했습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무브먼트랩에 발을 들여 놓은 고객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죠. 멤버십의 가장 큰 혜택은 주요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최대 20% 가량 할인 받으며 해당 브랜드를 사실상 최저가에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멤버십 대상의 독점 상품도 구매할 수 있죠.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온라인 구매시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무브먼트랩


현재 클럽 무브먼트 멤버십은 연회비 12만원의 가입형과 연회비 6만원의 갱신형 2가지가 있습니다. 가입형은 신규로 멤버십에 가입하는 고객들을 위한 멤버십이고, 갱신형은 기존 멤버십을 갱신하는 고객들을 위한 상품입니다. 20% 가량 할인 받을 수 있으니 50만원 이상의 구매한다고 하면 가성비 측면에서 멤버십을 가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출시 이후 클럽 무브먼트 멤버십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입니다. 2021년 1월부터 시작해 1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는 3,500명을 넘어섰습니다. 게다가 멤버십 고객의 객단가는 기존 고객 대비 20% 정도 높습니다. 아직 멤버십 체계나 가격 등을 조정해가며 계속 발전시키는 단계이긴 하지만, 객단가와 충성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사업적인 성과를 기대해 볼만 합니다.




카페에서도 시즌 테마를 즐길 수 있습니다. ‘푸른 얼룩’ 전시 기간 동안에는 카페 곳곳에 플랜테리어 그룹 스튜디오 콩테가 만든 작은 정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진성훈


오디너리핏이 ‘푸른 얼룩’ 테마를 반영해 개발한 케잌과 음료 메뉴입니다. ⓒ무브먼트랩



그곳과 함께 하고 싶다, 혼자할 수 있더라도

리빙쇼를 추구하는 전시형 편집숍인 무브먼트랩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무브먼트랩과 뜻을 같이 하는 좋은 파트너사를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시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멤버십 고객의 혜택도 강화하면서 매출을 높여갈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약 80여개의 브랜드들이 무브먼트랩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런 브랜드들이 아니라 하나같이 남다른 디자인과 개성있는 컨셉 등을 자랑하는 브랜드들이죠. 그렇다면 감도 있는 브랜드들은 왜 무브먼트랩과 협업을 하는 걸까요?


먼저 집객력을 가진 무브먼트랩의 전시 판매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주는 효과적인 창구입니다. 한 달에 2만명의 방문객들에게 노출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전시 테마 하에 각 브랜드의 관점을 담아 진열하기 때문에 브랜딩도 할 수가 있죠. 사치스럽게 공간을 활용하는 무브먼트랩에서 각 브랜드는 군집 속의 하나가 아니라 각 브랜드가 군계일학이 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브랜드의 사업적 확장에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가드닝 클래스를 위주로 비즈니스를 하던 스튜디오 콩테는 무브먼트랩과의 협업을 발판삼아 식물 연출, 전시 등 B2B 영역으로 사업 전선을 넓혔습니다. 무브먼트랩과의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브랜드가 가진 숨은 가치와 새로운 고객층을 발견하게 된 거죠. 무브먼트랩이라는 무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무브먼트랩은 함께 하는 브랜드들이 제품 기획과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많은 영역을 지원합니다. 물류 법인을 두고 실비 수준의 합리적 가격으로 제품 보관, 배송, 가구 제품 설치 등의 유통 인프라를 공유하기도 하고, 무브먼트랩 웹사이트나 오프라인 매장에 쌓이는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과 세일즈 관련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도 하죠. 그리고 제품 판매나 홍보에 필요한 브랜드 및 세일즈 콘텐츠를 제작해 마케팅도 돕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알리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신진 브랜드나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신경 쓰기 어려운 영역들을 무브먼트랩이 대신 해주는 거죠. 각자 강점이 있는 영역을 더 잘하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마련한 셈입니다.



그곳의 실험은 계속된다, 실패할 지 몰라도


‘취향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


무브먼트랩의 슬로건입니다. 무브먼트랩은 이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리빙쇼를 추구하는 전시형 편집숍을 열어 당장 가구를 살 일이 없는 사람들도 불러들였죠. 취향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기적으로 무브먼트랩을 방문해서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자 브랜드로 기능하는 거죠. 무브먼트랩이 그리는 미래도 이런 지향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선 무브먼트랩은 ‘무브먼트 스테이’라 부르는 숙박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브먼트랩에 입점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을 위주로 구성한 숙박 공간으로, 부산, 의왕 등의 시즌 전시와 연계해 시즌에 따른 변화를 연동시킬 계획입니다. 무브먼트랩이 직접 부동산을 소유해서 운영하는 호텔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주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죠. 부동산 소유주는 무브먼트랩의 안목을 활용해 감도 있는 숙박 시설을 꾸밀 수 있고, 투숙객은 하루종일 공간을 경험하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취향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무브먼트랩은 전시형 쇼룸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가치를 높이는 시도입니다.


무브먼트랩이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 영역은 인테리어 비즈니스입니다. 취향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자기 취향대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는 샘플이나 도움이 필요하죠. 무브먼트랩의 인테리어 비즈니스는 이런 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테리어 서비스를 통해 제품 단위가 아니라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하나의 룩(Look)으로 제안을 하는 거죠. 인테리어에 가구가 포함되기 때문에 인테리어 비즈니스가 커질 수록 가구 판매가 늘어나는 건 물론입니다.


제품은 브랜드를 넘어설 수 없고, 브랜드는 취향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팔기 위해 제품이 아니라 취향에 초점을 맞추는 무브먼트랩의 시도는 비효율적이고 쓸모 없는 일이 아니라 더 큰 비즈니스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닦는 일입니다. 늘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무브먼트랩의 시즌 전시와 큐레이션처럼, 무브먼트랩의 미래도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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