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곤충도 고객이다, '호흡하는 건축'을 설계하는 이유

WOHA

2024.11.27



‘호흡하는 건축물’


싱가포르의 건축 설계 사무소, ‘WOHA’가 짓는 건물들을 부르는 별명이에요. WOHA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에 진심인데요.


WOHA는 어떤 건축물을 만드는 걸까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더운 지역에서 건물의 구조로 통풍을 유도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한 건물을 만든다든가, 건물에 풍성한 숲을 들여 건물의 온도를 낮추는 식이에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인간을 더 편안하게 만들죠.


WOHA가 이렇게 자연적인 건축을 지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가, 그리고 건축가의 역할 때문인데요. WOHA가 정의하는 건축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WOHA 미리보기

 #1. 무더운 발리에서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법

 #2. 숨 쉬는 건물로 도심 속 생태를 만들다

 #3. 대학교 안에 호수를, 호수 위에 대학교를

 새와 곤충도 고객으로 생각하는 건축가




방콕 사우스 사톤 로드에는 특이한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개발도상국의 고층 주택은 대부분 실내 냉방에 의존하죠. 하지만 열대 지방의 고층은 오히려 가벼운 바람, 일년 내내 온화한 날씨, 일정한 온도와 높은 습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야외 생활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방콕 사우스 사톤 로드의 ‘더 메트(The MET)’는 이 이점을 활용해 지어졌어요. 자연적으로 환기가 되고, 천장이 뚫려 있는 녹색 타워. 메트의 핵심은 통풍이에요. 이 아파트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집처럼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됐죠. 빛과 경치가 창을 통해 완벽하게 들어오고요. 옥상 정원, 정원이 꾸며져 있는 고층 정원, 바비큐가 가능 공간, 도서관과 스파를 갖춘 야외 공용 테라스도 있어요.


ⓒW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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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더 메트는 아파트의 외부와 내부를 잇고 있어요. 개인 및 공공 테라스는 5층마다 블록을 연결하듯 이어져 있어요. 이런 구조를 통해 모든 집들은 공기가 교환되면서 환기가 돼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죠. 더 메트 아파트는 2011년 세계적인 건축상인 리바 루베트킨상(RIBA Lubetikin Prize)과 2009년 싱가포르 대통령 디자인 상을 수상했어요. 더 메트를 지은 주인공은 바로 싱가포르의 ‘WOHA’예요.


WOHA는 1994년 싱가포르에 설립된 건축 설계 사무소예요. 웡문섬(Wong Mun Summ)과 리차드 해셀(Richard Hassell)이 공동 창립했죠. 두 사람은 한 건축 사무소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이후 독립해 WOHA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WOHA에게 더 메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에요. WOHA가 디자인한 대부분의 건축들이 이렇게 자연 친화적이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건축물에는 ‘호흡하는 건축’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이들은 건축을 통해 자연 친화적인 삶을 설계하고, 도시 생물 다양성까지 촉진해요. WOHA의 호흡하는 건축을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WOHA



#1. 무더운 발리에서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법


웡문섬과 리차드 해셀은 왜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하게 된 걸까요? 그들이 대학에 다녔던 시기, 세계는 엄청난 석유 위기를 겪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이에 맞춰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는 건축에 대해 가르쳤죠.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도 환경적인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우리에게 건축가로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최악의 기후 및 생물 다양성 위기, 그리고 팬데믹은 태도의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죠.”

-리차드 해셀, 화이트월 인터뷰


그래서 WOHA는 모든 프로젝트를 다룰 때 더 큰 사회, 경제, 환경 시스템을 고려하는 ‘시스템적 접근 방식’을 개발했어요. 맥락, 사람, 자연과 상호 작용을 고려한 건축을 위해서죠. 예를 들어, 고층 빌딩의 녹지는 건물 사용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이든 행인이든 그 녹지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물학적 효과를 주죠. 공기를 정화하고, 소음을 차단하고, 열을 흡수하고, 동물이 사는 식으로요. 녹지 개발은 도시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거예요.


그 예 중 하나가 발리의 ‘알리라 빌라 울루와뚜(Alila Villas Uluwatu)’예요. 그야말로 발리 자연 경관의 일부처럼 보이는 리조트죠. 발리 부킷 반도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절벽과 험준한 사바나 풍경이 펼쳐지는 야생 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하지만 야생과 완벽히 어우러지는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리조트죠.


50개의 스위트 호텔과 34개의 주거용 빌라로 이루어진 이 리조트는 대부분 현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어요. 즉, 현장에서 채취한 석회암과 재활용 철도 침목 등이 사용되었죠. 창백한 석회암 벽은 바다의 절벽에서 영감을 받았고, 청동기 시대 애니미즘부터 네덜란드 아르 데코 및 현대적 모던 디자인까지, 수세기 동안 발리가 영향을 받은 풍부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요.



ⓒWOHA


ⓒW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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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뿐 아니라, 이 리조트는 최대한 자연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설계됐어요.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건축을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건물의 에너지와 물 소비를 줄이는 것이죠. 알리라 빌라 울루와뚜는 교차 환기, 차양, 빗물 재활용, 태양광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조경을 활용해 건물의 뜨거운 열대 태양을 가리고, 식물이 건물 표면으로 그 열을 다시 방사하는 대신 태양 에너지로 활용하죠. 이로써 건물 내부의 에어컨 사용을 줄일 수 있어요. 또 대부분의 실내에는 자연 환기가 가능하도록 구조화했어요. 식물이 건물 주변의 온도를 식히고, 야외 활동을 장려하는 쾌적한 조경 환경을 만들었죠.



#2. 숨 쉬는 건물로 도심 속 생태를 만들다


알리라 빌라 울루와뚜가 야생 속 생태주의 건물이라면, 도심 속에 마치 야생 같은 생태를 만들기도 해요. 2016년 완공된 싱가포르의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Oasia Hotel Downtown)’이 바로 그런 경우죠.


싱가포르에 중심 상업 지구(CBD) 중심부에, 거대한 초록빛 타워가 있어요. 190.15m에 달하는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 총 27층으로 100개의 사무실과 314개의 호텔 룸을 가진 이 건물은, 도심 속에 우뚝 선 숲을 연상시켜요. 붉은색 외관을 초록빛 풀들이 잔뜩 감싸고 있거든요.


ⓒWOHA


매끈하고 밀폐된 서양식 고층 빌딩과 달리,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의 별명은 ‘살아있는 타워’예요. 싱가포르의 열대 자연과 열대 기후를 잘 활용했거든요.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에는 사무 공간, 호텔, 클럽 등 용도가 다른 층마다 자체 스카이 가든을 만들었어요. 추가적인 ‘지상’을 만든 거나 다름없죠. 총 4개의 스카이 가든은 고밀도의 도심 속에서도 고층 건물을 통해 여유로운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도와요.


각 스카이 가든은 마치 ‘도시의 베란다’ 같아요. 건물 외벽을 통해 스카이 가든 내부는 높은 수준으로 보호되면서도, 도시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투명성과 개방성이 공존하죠. 덕분에 바람이 건물을 통과하여 환기가 용이해요. 이런 개방형 공간은 밀폐된 내부의 에어컨 공기 대신 녹지, 자연광,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열대 공간이 돼요.


건물의 표면은 팔레트가 주요 부분을 구성하고 있어요. 독특한 점은 건물 전체를 초록 식물이 둘러싸고 있어 새와 동물의 안식처로 사용되는 것이죠. 이 덕에 생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건물이 됐어요. 외관의 식물은 총 21종의 덩굴식물과 33종의 식물, 나무로 이루어져 있어요. 파사드 플랜터 상자는 무려 1,793개에 달하죠.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은 주변 건물 10곳의 녹색 부족 현상을 보완하는, 대안적인 빌딩이 되었어요. 빨간색 알루미늄 메시 클래딩은 덩굴식물이 사이사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이에 따라 다채로운 꽃이 흩어져 새와 곤충의 먹이가 되죠. 덩굴식물 그 자체로도 빛과 그늘, 바람을 만들어내면서 일종의 모자이크 디자인이 되고요.


ⓒW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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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연을 활용한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은 기존 건물보다 기온이 낮다고 해요. 유리와 강철로 되어 있는 주변 건물이 평균 섭씨 55도인 데에 비해,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은 25도에 불과하죠. 평소 싱가포르의 평균 기온이 30~32도인 걸 생각해 보면, 평균 기온보다 낮은 선선한 건물 유지가 가능한 거예요.


“건물 하나만으로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오아시아 타워는 더 많은 건물이 이런 방식으로 설계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프로토타입입니다. 매우 밀집된 지역에 오아시아 타워 같은 여러 개의 건물이 산재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도시의 열섬 효과를 해소하고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입니다.”

-리차드 해셀, 화이트월 인터뷰



#3. 대학교 안에 호수를, 호수 위에 대학교를


도심 속에 생태계를 만든다면, 죽은 땅도 되살릴 수 있을까요? 실제로 WOHA는 황무지를 대학교로 재탄생시켰어요. 2011년 디자인을 시작해 2024년 현재까지 공사 중이지만, 일부 공간은 이미 공개된 방글라데시 다카의 ‘BRAC 대학교’예요.


방글라데시의 다카는 인구 고밀도 지역이에요. 맨해튼의 두 배에 달하는 인구 밀도를 가지고 있죠. WOHA는 비단 캠퍼스의 리노베이션뿐 아니라, 다카의 지역민들이 혼잡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편의 시설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WOHA


BRAC 대학교 캠퍼스에는 인공 호수가 있어요. WOHA의 전략은, 이 호수 위에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공간인 ‘아카데미아’를 띄우고, 그 아래에 ‘캠퍼스 공원’을 만들어 두 개의 뚜렷한 지층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는 인간과 열대 나무 맹그로브의 공존을 위한 전략이에요. 


하지만 캠퍼스 안의 인공 호수는 이미 오염된 뒤였어요. WOHA는 이 오염된 호수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도시의 녹지 공간, 생물이 사는 연못으로 바꾸어 지역 사회에 새로운 초록 바람을 불어 일으키고자 했죠.


ⓒW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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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WOHA가 늘 그랬듯 자연 에너지 친화적인 설계를 했어요. 개방된 정원 테라스를 만들고, 교차 환기 시스템으로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공기를 만들고,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 요구량의 25%를 충당하도록 했죠. 태양광 배열 아래 공간에 그늘과 확산 조명을 제공하는 ‘열대 우산’을 배치했고요. 이런 설계를 통해 캠퍼스의 에너지 수요는 기존 건물에 비해 58.5%나 감소할 수 있었어요.


물 수요 역시 50%나 줄일 수 있었어요. 레인 체인을 통해 빗물 수확을 용이하게 하고, 고급 하수 처리 시설로 탁한 물을 조경 및 변기 세척에 사용하도록 전환했죠. 또, 식물이 심어진 외벽은 실내 기후를 최적화해서 냉방 수요를 40%나 줄일 예정이에요.


BRAC 대학교는 10,000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커뮤니티 중심지로 재탄생할 예정이에요. 대학 강당뿐 아니라 다목적 홀, 공공 갤러리와 같은 다양한 모임 장소가 만들어지고 있죠. 아카데미아와 캠퍼스 파크는 다카의 강한 햇볕와 폭우로부터 지역 사회를 보호하고, 주변 온도를 낮춰 편안한 날씨를 만들 거예요.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 사회의 심장이 될 예정이죠.


옥상은 다카의 인구 밀도로 인해 복잡한 도시 속에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유니버시티 그린’ 공원으로 사용될 거예요. 이 옥상 공원은 태양광 캐노피 외에도 레크리에이션 수영장, 200m 달리 트랙 등을 갖추게 되죠. 


건물 내부는 지역 재료와 전통 공예 및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방글라데시의 전통적이면서도 견고한 미학을 선보일 예정이죠. BRAC 대학교의 공사는 이제 곧 마무리 될 것으로 보여요. BRAC 대학교가 완공되면, 이 학교는 어떻게 디자인이 살아 숨 쉬는 학습 환경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프로토타입이 될 거예요.


ⓒW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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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곤충도 고객으로 생각하는 건축가


WOHA의 ‘호흡하는 건축물’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됐나요? 지금도 WOHA는 쉬지 않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물을 건축하고 있어요. 이들의 건축물은,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대안책이 되어가고 있죠.


“건축가는 형태를 만드는 사람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물의 스타일링이 요점이 아니죠. 우리의 많은 디자인 연구는 건물의 역할을 그 면적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데 집중합니다. 즉, 주변 지역의 일부, 기후, 완경, 문화, 역사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건물이 부지와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해 건물을 설계하죠. 우리는 고객을 유일한 이해 관계자로 보지 않습니다. 주변 지역과 도시를 고려해요. 심지어 새와 곤충도 고객으로 생각합니다.”

-리차드 해셀, stir world 인터뷰


WOHA가 자연 생태적인 건물을 만드는 이유는 건축가란 ‘넓게 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즉, WOHA 건축의 핵심은 그 건물을 넘어서서 지역을, 도시를, 나라를, 지구를 고려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자연을 건축에 통합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탱할 자연은 남지 않을 겁니다. 도시는 자연의 일부, 즉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의 일부여야 합니다. 역사를 통틀어 건축과 자연은 별개의 영역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로 봅니다.”

-리차드 해셀, stir world 인터뷰


이들은 ‘건축가는 미래에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죠. 이들이 정의하는 건축가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인 거예요. 더 나은 건축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WOHA이기에, 앞으로 이들의 건축이 기대되어요.





Reference

WOHA 홈페이지

world-architects "WOHA-Oasia Hotel Downtown”

world-architects "WOHA-The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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