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건강상의 이유로 안먹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이스크림은 대체로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죠. 그렇다면 이런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박물관을 만든다면 사람들이 찾아갈까요? 아마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아이스크림이 맛있으면 됐지, 굳이 아이스크림에 대한 역사나 제조 방법, 관련 정보 등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뉴욕에는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박물관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줄 세우는 곳이 있어요. 이름도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이에요.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이곳에서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정보는 있는 듯 없는 듯 제공해요. 대신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게 하고,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공간을 구성했죠. 그래서 뉴욕에 있는 모든 뮤지엄 중에 입장료가 가장 비싸도 사람들이 줄을 서요.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은 무엇이 다르길래, 뮤지엄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보기 어려울만큼의 긴 줄을 세울 수 있는 걸까요? 힌트는 스스로를 뮤지엄이 아니라 ‘익스피리움(Experium)’으로 정의하는 데 있어요.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 미리보기
•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짓는 이유
• 뉴욕에 있지만 뉴욕에 있는 것과는 다른 이곳
• 핑크빛으로 포장된 거대한 광고판
• 행동한만큼 추억이 남는 공간
• 뮤지엄은 거들 뿐, 주객이 전도된 뮤지엄
• 경험적 공간보다 더 중요한 건 본질적 가치
뉴욕은 뮤지엄 천국입니다. 우선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가장 미국적인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휘트니 뮤지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나선형 구조로 유명한 구겐하임 뮤지엄, 미술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마 뮤지엄이 뉴욕의 4대 뮤지엄이라고 불리며 뉴욕의 뮤지엄들을 대표하죠. 이뿐 아니에요. 뉴욕에는 한가지 테마 혹은 컨셉을 중심으로 한 뮤지엄도 곳곳에 있어요.
'스파이스케이프(Spyscape)'는 스파이 영화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레이저 빔 보안 장치를 통과해 볼 수 있는 등 쉽게 알 수 없었던 스파이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요.
'모매쓰(MoMATH)'는 테마가 수학이에요. 수학을 놀이와 접목하여 어린이들이 수학을 더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곳이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다녀가면서 더 유명해졌어요.
‘뮤지엄 오브 섹스’는 성에 관한 뮤지엄이에요. 1층에 있는 성인용품 편집숍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뮤지엄이 나오는데, 뮤지엄보다 1층에 있는 편집숍이 인기가 더 많아요.
‘컬러 팩토리’는 색깔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에요. 다양한 색상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머시브 체험으로 유명한데, 전시에 따라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참여시키기도 해요.
그리고 하나 더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Museum of Ice Cream, 이하 MOIC)’은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뮤지엄이에요.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어요.
ⓒ시티호퍼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뮤지엄들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중에서 가장 입장료가 비싼 뮤지엄은 어디일까요? 공립 혹은 사립이지만 공익적 목적을 위한 뮤지엄들은 25달러 수준으로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아요. 테마 혹은 컨셉 뮤지엄의 가격대가 비싼 편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곳은 바로 MOIC이에요.
아무리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준다고 해도, 입장 티켓이 6만 원씩이나 하면 관람객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지 몰라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요. 가족, 커플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요. 아니 도대체 MOIC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길래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까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짓는 이유
MOIC은 티켓을 산다고 아무 때나 입장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시간대별로 일정 규모의 인원씩 끊어서 입장이 가능해요. 공간이 방처럼 구분되어 있는데, 한 번에 많은 관람객이 몰릴 경우 쾌적한 경험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또한 차례가 되어도 바로 입장할 수 없어요. 반원 형태로 모여 관람을 위한 설명을 10분 정도 들어야 하죠. 그런데 이 설명이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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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이 여기에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알아요. 당신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 추억을 서로 공유하고 다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라는 점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죠. 바깥 세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이스크림의 우주 안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요. 해결책으로 아이스크림의 세계로 들어서면 바깥 세계의 문제가 사라질 거라 이야기해요.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라고 제안합니다.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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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입장을 하자마자 ‘My ICE CREAM NAME IS…’ 코너에서 이름 스티커를 떼어 자기만의 이름을 적고 옷에 붙입니다. 그 때부터는 바깥 세상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아이스크림 세계에서의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거예요. 누구도 강요하진 않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이름을 새로 지어 스티커를 옷에 붙여요.
이것은 아이스크림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머리속에 그리게 하고, 그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일종의 의식이에요. MOIC의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인 매니쉬 보라(Manish vora)가 휘트니 뮤지엄에서 일할 때 그곳에서 보고 배운 기술을 MOIC만의 방식으로 응용한 거죠.
뉴욕에 있지만 뉴욕에 있는 것과는 다른 이곳
드디어 입장한 첫번째 공간은 핑크색의 바로 꾸며져 있어요. 마치 아이스크림의 세계로의 소프트한 랜딩을 도우려는듯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제공해요. 물론 공짜이고 여러번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공간에는 아이스크림 외에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어요. 바로 메뉴판이죠.
ⓒ시티호퍼스
메뉴판을 자세히 들여다 볼게요. 우선 메뉴판의 가격표가 비현실적인데, 가장 비싼 건 ‘Shop till you drop’ 1백만 달러(약 13억 원)예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CSI:NY 7번째 시즌의 에피소드 ‘Shop till you drop’을 패러디한 거죠. 반대로 0달러짜리도 있어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 머니 네버 슬립을 패러디한 ‘We never sleep’이죠.
Big Appletini는 Appletini라는 사과맛 칵테일이 있는데 뉴욕의 Big Apple로 패러디한 거고, Yankeemosa는 Mimosa라는 칵테일을 Yankees 구단 이름과 결합해 말장난으로 푼 거예요. Knicky Sour 역시 Midori Sour라는 칵테일과 뉴욕 닉스 구단을 엮어서 만든 말이죠. Mad men-hattan은 매드맨이라는 드라마와 맨하탄을, MOMA-artini는 모마와 마티니를 가지고 말장난을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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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메뉴판의 메뉴에 메뉴명과 비현실적인 가격을 위트를 줬어요. 그런데 이 메뉴판이 인상적인 이유는 입장하기 전에 바깥의 현실 세계를 잊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뉴욕과 관련한 내용을 살짝 트위스트해서 뉴욕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세계에 왔다는 것을 다시금 넌지시 알려주기 때문이에요.
핑크빛으로 포장된 거대한 광고판
그다음 공간부터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때부터 인스타그래머블한 세계가 열려요. 핑크빛의 블링블링한 파티룸. 핑크색으로 꾸며진 감각적인 지하철 내부, 노란 바나나와 핑크 바나나가 각각 절반씩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공간 등이 펼쳐지죠. 누가봐도 사진찍기 좋은 공간이에요. 자연스럽게 SNS 상에서 MOIC이 광고되죠. 참고로 파티룸에서 스틱바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줘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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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공간 중에서 눈여겨 볼만한 공간이 있어요. 바로 핑크색으로 꾸며진 지하철 내부죠. 여기에는 보통의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벽에 광고판이 붙어 있어요. 그냥 지하철 느낌을 내기 위해서 흉내만 낸 정도가 아니라 진짜 광고를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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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에 있던 포스터는 사운드 전문 회사 ‘돌비(Dolby)’ 광고였어요. 어쩐지 지하철 내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중간중간 안내 멘트가 나왔는데, 이 사운드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베이스가 탄탄하게 깔리면서 음악이 지하철 내부를 꽉 채우는 느낌이 든달까요. 이러한 사운드가 돌비 스피커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여기에다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팝업 매장을 열었으니 방문해보라는 광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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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MOIC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사진만 찍게 두지 않아요. 광고주와 스폰서십을 맺고 자연스럽게 광고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죠. 사업 초기부터 데이트 앱 ‘틴더’, 카드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의 브랜드를 MOIC 공간에다 자연스럽게 녹여냈어요.
행동한만큼 추억이 남는 공간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들을 지나면 그 다음에는 관람객들이 액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나와요. 공간이 핑크빛 톤으로 물흐르듯이 흐르다 갑자기 흰색 벽으로 된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알파벳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알파벳들과 숫자를 조합해서 각자가 적고 싶은 메시지를 화이트보드에 붙일 수 있어요. 여기에서도 알파벳은 핑크색으로 만들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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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을 가지고 아무 메시지나 만들어서 화이트보드에 붙일 수 있지만, 화이트보드만 덜렁 있으면 메시지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MOIC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What is your dream?)’, ‘당신을 무엇을 축하하고 있나요?(What are you celebrating?)’ 등 핑크빛과 어울리는 질문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죠.
그 다음 공간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떠 컵에다 담아주고, 관람객들의 더 본격적인 참여를 유도해요. 아예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관람객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구성한 거예요. 테이블 위에는 MOIC에서 준비한 종이가 놓여있는데,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퀴즈, 다른 그림 찾기, 낱말 퍼즐, 미로 찾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물론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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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른 그림을 찾고, 낱말 퍼즐을 풀고, 미로를 찾은 후 다음 공간인 지하로 가야하는데, 가는 길이 인상적이에요. 우선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줄서있는 무지개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여기도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라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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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지나면 선택의 길에 놓여요.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미끄럼틀을 탈 것인가. 하지만 아무도 고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끄럼틀에 줄을 서요. 미끄럼틀을 타는 자체도 재미있지만, 뉴욕에서 가장 긴 미끄럼틀이라는 상징성도 있거든요. 그렇게 미끄럼틀을 타면, 신바람나는 기분으로 지하로 곧장 내려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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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간에서는 또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이스크림 판매 트럭을 조립해 볼 수 있어요. 물론 완성된 트럭은 가져갈 수 있죠. 또한 다음 공간에서는 그네를 타거나 농구를 하거나 탁구를 칠 수 있는 등 액션의 활동성이 점점 높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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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마지막 공간에서 액션의 정점을 찍는 공간이 나타나요. 바로 스프링클 풀이에요. 이곳에서는 아이스크림에 뿌려먹는 스프링클을 풀에다가 한가득 풀어놓았어요. 물론 진짜 스프링클은 아니고 스프링클 모양의 플라스틱 막대인 거죠. 이곳에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프링클 풀에 몸을 담가요. 아이들은 스프링보드에서 점프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고 풀로 들어가기도 하죠. 모두를 동심으로 만드는 시그니처적인 공간이에요. 물론 대표적인 포토 스팟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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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은 거들 뿐, 주객이 전도된 뮤지엄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이니 아이스크림의 역사나 정보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MOIC에서 아이스크림에 대한 역사나 정보를 빼놓지는 않아요. 하지만 뮤지엄이라고 해서 그러한 내용을 중심에 두진 않아요. 오히려 그러한 정보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연에 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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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볼게요. 첫 번째 정보는 아이스크림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에요.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처음에 설명드렸던 입구 쪽에 있어요.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기 전에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는 공간의 벽에 빼곡하게 적혀 있죠. 이 공간에서 아이스크림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알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지시에 따르느라 볼 겨를이 없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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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정보는 전 세계의 아이스크림에 대한 설명이에요. 나라별로 특징적인 아이스크림에 대한 소개를 하는 거에요. 한국에서는 얼음을 갈아서 팥을 포함에 여러 토핑을 얹어 먹는 ‘팥빙수’를, 태국에서는 재료를 차가운 철판에 부어 납작하게 만든 뒤 말아먹는 ‘아이팀패드’를, 터키에서는 손님과 장난을 치며 쇼맨십을 보여주는 ‘돈두르마’를, 뉴질랜드에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벌집 토피를 함께 먹는 ‘호키포키’ 등을 소개하는 거예요. 전 세계 아이스크림에 대한 소개로 한 공간을 꾸며도 충분할만큼 내용이 많은데, 이 설명도 공간의 한 켠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붙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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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정보는 아이스크림에 관한 잡학지식이에요. ‘차가운 어떤 것이든 아이스크림으로 부를 수 있는가?’, ‘아이스크림 산업은 얼마나 큰가?’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거예요. 덮개에 붙어 있는 질문을 들추면 답을 볼 수 있게 했죠. 아이스크림 뮤지엄에서 다룰 법한 내용이지만 이러한 정보 역시도 장식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붙여놓았어요. 2층에서 지하로 가는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곳에다가요.
이처럼 MOIC에서는 뮤지엄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소화해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뮤지엄과는 거리가 있죠. 아이스크림에 대한 역사나 정보가 중심이 되는 게 보통의 방식이니까요. 그렇다면 MOIC은 아이스크림 뷔페 혹은 아이스크림 테마파크 등의 이름을 붙였어도 됐을텐데, 왜 굳이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넣은 걸까요?
경험적 공간보다 더 중요한 건 본질적 가치
MOIC은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건 뮤지엄이 아니라 ‘익스피리움(Experium)’이에요. Museum과 Experience를 조합한 말이죠. 굳이 해석해보자면 경험하는 뮤지엄이라는 뜻이에요. 정보 제공의 뮤지엄보다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추구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MOIC는 이러한 경험적 공간을 왜 만든 걸까요?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인 보라는 이렇게 말해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온라인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는 온라인 콘텐츠만큼 설득력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래서 MOIC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커뮤니티화 되는 것을 바라죠.
이처럼 아이스크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첫 시작을 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이스크림보다는 온라인과 경쟁할 수 있을만큼 매력적인 공간에 무게중심이 있어요. 그래서 MOIC를 Museum of Ice Cream의 약어로 말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Museum of Imagination and Creativity의 줄임말이라고도 부르죠.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MOIC은 급기야 2019년에 익스피리움을 만드는 모회사 ‘피규어8(Figure8)’을 만들어요. 그들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MOIC을 보고 익스피리움을 구현해달라고 요청하는 회사와 브랜드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비전과 수요가 만나니 거칠 게 없었어요. 2억 달러(약 2,600억 원)의 가치로 시리즈 A라운드 투자까지 받았죠.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파죽지세였던 MOIC도 휘청거리기 시작했어요. 샌프란시스코 지점은 문을 닫았고, 직원도 200명이나 감원했죠. 그럼에도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온라인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비전은 꺾이지 않았어요.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다시 뉴욕 지점을 열었고, 미국 오스틴, 싱가포르, 미국 시카고, 중국 상하이에 MOIC을 런칭하면서 다시 사세를 확장하고 있어요.
‘당신 안에 있는 동심을 재발견해 보세요.(Rediscover the kid in you)’
MOIC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볼 수 있는 첫 메시지예요. MOIC이 만드는 매력적인 공간도 중요하지만, 동심이라는 본질적인 감수성을 채워줄 수 있다면 MOIC의 미래가 녹아 내리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누구나 한번쯤은 어린 아이일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Reference
• I Scream You Scream The Meltdown At The Museum of Ice Cream, Forbes, Alexandra Wilson
• S.F. Museum of Ice Cream has permanently closed, The Business Journals, Alex Barre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