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객에게 지역의 ‘시간을 처방’한다?, 이 호텔이 향기를 증류하는 이유

코린쿄

2024.11.22





‘가나자와의 시간을 처방한다.’


일본 가나자와에 위치한 ‘코린쿄’라는 호텔의 컨셉이에요. 지역의 시간을 처방한다니, 심오해 보이는 이 문장은 무슨 의미일까요?


코린쿄를 만든 류자키 쇼코는 호텔이 ‘미디어’라고 말해요. 호텔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람과 땅을 연결하는, 그리고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미디어로서 기능한다는 뜻이죠. 긴 시간을 보내는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은 그 토지에 스며든 풍토와 성숙하고 세련된 문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류자키 쇼코는 사람들이 코린쿄에 머무르며 가나자와를 ‘감각’으로 경험하기를 바랐어요. 피상적으로 가나자와의 역사나 문화를 본 떠 만든 시각적 요소들로 이런 경험을 디자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대신 1차원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나자와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공기’, 혹은 ‘채도’를 구현하고자 했어요.


그렇다면 코린쿄에서는 어떻게 호텔로 가나자와의 시간을 처방하고 있을까요?


코린쿄 미리보기

 가나자와의 시간을 처방하는 호텔

 호텔에서 향기를 증류하는 이유

 호텔은 아름답게 쓰인 소설이다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를 비교하는 예약 플랫폼




‘코린쿄(Korinkyo)’는 류자키 쇼코(Ryuzaki Shoko)가 이끄는 ‘스이세이(SUISEI)’의 작품이에요. 스이세이는 코린쿄를 포함해 일본 내 6개의 호텔을 프로듀싱한 곳으로, 일본 호텔 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어요.


자신을 호텔 프로듀서라 소개하는 류자키 쇼코는 2015년 스이세이를 설립하고, 이후 레코드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컨셉의 ‘호텔 쉬(HOTEL SHE)’, 산후 케어 호텔 ‘카푸네(KAFUNE)’ 등 테마와 메시지가 또렷한 호텔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가 호텔 창업을 결심한 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미국 횡단 여행을 갔을 때예요. 기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이동했지만, 어떤 도시를 가도 머무는 호텔만은 늘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역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호텔은 단 한 곳도 없었죠. 매일 밤, 내부가 똑같은, 표준화된 호텔 방에서 머무는 경험은 여행 전체를 지루하게 만들었어요.


류자키는 개인적인 숙박 경험을 계기로 호텔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15년, 부모님의 펜션 사업을 승계하며 본격적으로 숙박업에 뛰어들었죠.


ⓒSUISEI Inc.


ⓒkorinkyo



가나자와의 시간을 처방하는 호텔


일본 가나자와에 위치한 코린쿄는 류자키 쇼코의 호텔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프로젝트예요. 그가 이끄는 스이세이는 가나자와라는 지역의 역사와 맥락, 공기를 해독해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제안하는 호텔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어요.


가나자와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지역은 아니지만, 일본 내에서는 교토 다음으로 일본의 옛 모습과 전통문화가 남아 있는 도시로 유명해요. 특히 금박공예 같은 전통 공예가 발달해 풍성한 문화와 예술이 녹아든 도시의 이미지가 있어요.


이처럼 눈에 보이는 가나자와의 이미지를 호텔에 담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 수 있어요.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의 흔적을 호텔 내부로 가져오거나, 가나자와에서 유명한 특산품을 호텔의 테마로 구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류자키는 이런 건 모두 피상적인 체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코린쿄가 가나자와 그 자체이되, 가나자와 안의 또 다른 가나자와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가나자와 특유의 공기를 ‘해독’해 코린쿄에 담아내고 싶었죠.


그런데 ‘공기를 해독한다’는 말, 모호하지 않은가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건 철저히 류자키 쇼코의 개인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이에요. 류자키는 흐린 날이 많은 가나자와의 채도에 주목했어요. 물을 머금은 듯한 공기감과 특유의 섬세함을 코린쿄에 표현해내기로 해요.


“미디어에서 보이는 가나자와에는 호화롭고 비비드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가나자와를 몇 번 방문해 보니 그 이미지와의 갭이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연한 톤이랄까, 보다 내향적인 세계관이 요구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됐습니다.”

- 류자키 쇼코, 리얼로컬


핵심은 이미 정립된 가나자와의 이미지가 아닌, 땅의 본질적인 풍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자료 조사를 하며 가나자와의 역사와 관련 일화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류자키는 코린쿄가 위치한 고린보 지역의 한 스님 이야기를 접하게 됐어요. 스님이 증류기로 정제해 만든 안약이 사람들의 눈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였죠.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류자키는 ‘처방’과 ‘증류’를 코린쿄의 키워드로 설정했어요.


류자키에게 호텔은 미디어예요. 호텔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매체라고 생각하죠. 그런 관점에서 처방이라는 키워드 역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담고 있는 따뜻한 온도의 낱말로, 호텔에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호텔이란 곧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미디어. 사람과 땅을 연결하는 미디어. 그리고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미디어. 장시간을 보내는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은 그 토지에 스며든 풍토와 성숙하고 세련된 문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류자키 쇼코, 스이세이 공식 웹사이트


ⓒkorinkyo



호텔에서 향기를 증류하는 이유


코린쿄가 위치한 고린보는 가나자와에서 가장 번화한 길로 꼽히는 곳이에요. 네모난 창이 난 특색 없는 건물들 사이에서 둥근 아치가 층층이 쌓인 모양의 코린쿄 외관은 지나는 이의 시선을 끌어요. 코린쿄가 있는 이 건물은 1971년에 세워진 신비도 빌딩을 재탄생시킨 건데요. 신비도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유수의 갤러리로 여러 시대와 지역의 아름다운 공예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공간이었어요.


가나자와 땅의 공기감을 짜 넣은 호텔을 만들고 싶었던 류자키에게, 신비도는 최적의 건축물이었어요. 켜켜이 쌓인 공간의 역사와 시간을 다음 세대의 유산으로 이을 수 있을 테니 말이죠. 노후화가 너무 심해 거의 철거될 뻔했던 신비도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남기되, 내부를 완전히 리노베이션했어요. 그리고 외관의 아치에서 볼 수 있는 곡선미를 실내 디자인의 모티프로 녹여냈죠.


ⓒkorinkyo


ⓒkorinkyo


ⓒkorinkyo


ⓒkorinkyo


‘가나자와의 시간을 처방한다’는 문장을 내건 코린쿄는 지하 1층부터 지상 9층까지 이어져요. 호텔 정문을 들어서면 마치 비 온 뒤 물기를 머금은 숲에 들어온 듯한 아로마가 느껴져요. 1층의 상설 증류소에서 정제되어 나오는 향이에요. 가나자와가 접해 있는 하쿠산의 삼나무며 노송나무 같은 삼림 소재를 써서 매일 증류해요. 고객은 이 아로마 증류수를 호텔의 루프탑 사우나에서 사용하죠. 


증류소에서 추출되는 정유와 증류수의 향기와 감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죠. 투숙객은 훗날 호텔 1층 증류소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와 로비의 음악으로 가나자와의 공기를 떠올릴지도 몰라요. 


ⓒkorinkyo


ⓒkorinkyo


ⓒkorinkyo


ⓒkorinkyo


코린쿄의 어메니티에도 가나자와를 담았어요. 가나자와의 기후를 반영해 ‘페트리콜(Petrichor)’이라는 자체 어메니티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마른 땅에 비가 내릴 때 나는 흙 향을 담아낸 것으로, 특히 제품에 들어가는 물에 집중했어요. 하쿠산의 해빙수를 사용해, 마치 물이 자연에서 순환하듯 로컬에서 소싱하고 소비되는 어메니티를 목표로 했죠.


ⓒkorinkyo


18개의 객실은 주로 우드와 스톤 소재를 써서 눈이 편한 자연 색으로 마감했어요. 화학 소재는 눈에 띄지 않죠. 각 방에는 ‘코린쿄의 책’이 한 권씩 놓여 있어요. 책에는 호텔 건물의 역사부터 객실 내의 가구나 다기까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공간을 이루는 세부 사항이 담겨 있어요. 투숙객은 이 책을 읽으며 코린쿄에 흐르는 역사와 공간의 매력을 더 깊게 인식할 수 있죠.


류자키와 스이세이의 직원들은 코린쿄를 현대의 ‘샹그릴라’라고 생각해요. 즉 신비의 도시이자 지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 같은 곳이 되기를 바라죠. 매일 신선하게 증류한 하쿠산 나무의 향, 우아하고 은은한 빛, 편안한 음악이 모여 류자키가 해석한 가나자와의 감각이 이 곳에서 공간으로 구현되고 있어요.


“요즘은 모든 게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고객 경험까지도 기존 상품에 완벽하게 맞춰진 모양에 ‘당신을 맞추세요’라고 하는 게 보통이죠. 저는 거기에 약간의 ‘부드러움’이 더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소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듯이요. 그게 코린쿄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 류자키 쇼코, 리얼로컬


ⓒkorin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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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nkyo



호텔은 아름답게 쓰인 소설이다


근사한 호텔에서 마음껏 쉬다가도, 집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역시 집이 최고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경험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편해도 호텔은 집이 될 수 없죠. 아마 필연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의도가 개입된 공간이기 때문일 거예요. 즉, 호텔 프로듀서에게는 투숙객의 시간에 개입하고, 스테이를 디자인할 힘이 있다는 의미예요.


“호텔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우리는 고객에게 직접적으로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세상이 아직 보지 못한 옵션을 만드는 것’이라는 우리의 목표와 호텔은 완벽한 매치를 이뤄요. 그게 제가 호텔 사업을 하는 이유 같습니다.”

- 류자키 쇼코, 리얼로컬


호텔을 매개로 류자키는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요. 스이세이의 또 다른 호텔 브랜드 ‘호텔, 쉬’를 통해서는 ‘레코드플레이어, 참 멋지지 않나요?’라는 메시지를, ‘카푸네’를 통해서는 ‘출산 후에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호텔을 찾는 고객은 제안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관점과 취향을 연마해요.


ⓒHotel Cafune


“호텔은 절대 진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픽션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픽션을 만드는 건 진짜 사람들이죠. 바로 이러한 대조가 호텔을 흥미로운 곳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유토피아, 아니면 일반적인 천국이라는 것이 호텔의 본질적인 가치라고 생각해요.”

- 류자키 쇼코, 야도매거진


아름다운 소설을 만드는 일. 자연히 일을 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요. 류사키는 직원이야말로 호텔의 미학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호텔에서 직원 채용을 할 때는 서비스 정신 같은 환대 역량에 집중하죠. 스이세이의 직원에게는 꼭 요구되는 자질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감각’이에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라는 게, 뭔가 스타일리시하냐 아니냐 같은 피상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에 가까워요. 공간은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의해 모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물을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미학적 감각 없이는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 류자키 쇼코, 리얼로컬


코린쿄를 찾은 손님에게 직원은 자신이 코린쿄에서 좋아하는 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해요. 고객 응대 지침에 있는 내용이 아니기에, 직원마다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렇게 코린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 직원과 고객 사이에는 새로운 종류의 친밀감이 생겨나요. 그렇다고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를 지향하는 건 아니에요. 코린쿄 직원과 손님의 관계는 딱 다정한 동네 사람 정도죠. 류자키는 이를 ‘동네 사람의 환대’라고 불러요.


“호텔은 반은 프라이빗하고, 반은 퍼블릭하죠. 매니저나 큐레이터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르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만들어진 ‘아름다운 소설’에서 보내는 시간 같은 거예요.”

- 류자키 쇼코, 야도매거진에서


ⓒkorinkyo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를 비교하는 예약 플랫폼


그렇다고 스이세이가 호텔의 실체, 즉 아름다운 소설을 만드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아요. 호텔 관련 시스템과 콘텐츠까지 손을 뻗죠. 그중 대표적인 포트폴리오가 2021년 런칭한 호텔 예약 사이트 ‘칠린(CHILLNN)’이에요.


호텔을 예약할 때, 주로 어떻게 하시나요? 대부분 호텔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숙박 예약 플랫폼을 통해 숙박을 미리 예약하죠. 후자의 경우, 우리는 주로 호텔의 접근성, 가격, 방의 크기나 침대의 형태, 창밖 뷰 같은 조건을 고려해 방을 예약해요.


칠린은 이런 단순한 스펙 비교가, 하룻밤 묵기 좋은 호텔을 고르기에 불충분하다는 생각에서 탄생했어요.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에도 훌륭한 내러티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호텔 고유의 콘텐츠로 투숙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어요.


칠린은 단순한 스펙 비교를 넘어 호텔을 들여다보고 호텔의 건물, 이야기, 지역, 특징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요. 그리고 소재를 이리저리 편집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각 호텔을 마케팅하죠. 일본 내 1,000곳이 넘는 숙박시설이 칠린에 등록되어 있어요.


ⓒCHILLNN


ⓒCHILLNN


“기존의 예약 플랫폼에서는 호텔을 가격 같은 스펙으로 비교해 고객에게 소구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모든 호텔이 그 세계관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각 장소가 무게를 두는 ‘공기감’이나 소중히 여기는 ‘사상’을 고객이 제대로 이해한 후에 예약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류자키 쇼코, 리얼로컬


스이세이가 사업을 전개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호텔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여요. 단순히 하루 몸을 뉠 집 밖의 어딘가가 아니라, 하루에 10시간쯤 머무르며 방문한 지역 고유의 공기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죠. 스이세이의 다음 호텔, 아니 다음 콘텐츠가 기대되는 이유예요.


ⓒkorinkyo


ⓒkorinkyo





Reference

코린쿄 홈페이지

金沢の中心地に存在すべき、ホテルの姿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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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자와 - 네이버 지식백과

chilln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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