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한끼를 때운다면 무엇을 드시겠어요? 여러 음식이 있겠지만 컵라면을 빼놓기는 어렵죠. 그렇다면 컵라면이 왜 간편한 음식인지 인수분해를 해볼까요? 제품을 보호하는 포장, 제품을 요리하는 조리도구, 그리고 제품을 먹는 식기. 이 세 가지의 기능을, 한 손에 들 정도로 가벼운 ‘컵’ 하나로 대체했기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예요. 곱씹어 보면 그냥 간단히 먹는 음식이지만, 동시에 혁신적인 음식이라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컵라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사연은 이래요. 닛신 식품 대표가 미국 출장을 떠났을 때, 슈퍼마켓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어요. 한 매니저가 인스턴트 라면을 부숴 작은 크기로 만들고는 종이컵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포크로 먹고 있었죠. 다 먹은 후에는 컵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 버렸어요. 인스턴트 라면만 해도 복잡한 조리가 필요 없는 간편한 음식이었는데, 그 과정을 더 간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일회용 종이컵으로 조리도구와 용기를 합쳐 극강의 편리함을 추구했던 거죠.
이때 그의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먹는 방식도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인스턴트 라면 이상으로 간편한 식사인 컵라면을 개발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어요. 어떤 문제가 있었고, 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컵누들 뮤지엄 미리보기
• 마이 컵누들 팩토리 : 발명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 최초의 컵누들 : 먹는 방식을 혁신하다
• 역발상 마케팅 : 마케팅으로 외면받던 맛을 발굴하다
• 저 세상의 맛, 우주로 간 컵누들
캐릭터 산업이 발달한 일본은 마스코트의 천국입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마스코트들이 지자체나 브랜드를 대표하고, 인기 마스코트의 경우 굿즈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죠.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마스코트 중 하나로 닛신식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을 대표하는 깜찍한 병아리 ‘히요코짱’이 있어요. 히요코짱은 마스코트 중에서도 인기가 상당한데요. 무려 32만 팔로워를 지닌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에, 오사카에 단독 굿즈 샵까지 차렸어요.
그런데 어느날, 귀엽고 순진했던 히요코짱이 달라졌습니다. 시작은 히요코짱의 SNS였어요. 평소에는 평범하게 치킨라멘을 홍보하거나, 해맑게 사진을 올리던 히요코짱이 이상해 졌어요.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병아리가 아니라 ‘닭’으로 바뀌는가 하면, 끔찍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병아리에게 닭 육수 라멘 홍보를 맡기는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죠.
병아리에게 치킨라멘 홍보 따위를 시키다니 잘 하는 짓이다 /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다음 변화는 치킨 라멘 웹사이트였어요. 직접 그린 과격한 낙서와 함께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어요. 히요코짱이 더 이상 착한 아이 역할은 그만둔다며 사표를 제출한 거예요. 그리고 매일 밤 웹사이트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치맛 치킨 라멘을 먹은 히요코짱이 악마로 흑화하는 모습을 포착한 동영상이 게재되었어요.
"언제까지고 착한 아이일 거라는 생각은 집어치워!!" - 히요코 - ⓒ닛신식품
악마가 된 히요코짱 ⓒ닛신식품
사실 이 영상은 새로 출시된 김치맛 치킨 라멘, ‘키무라’의 광고였어요.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매운맛의 라면을 홍보하기 위해 ‘귀여웠던 히요코짱도 악마로 만든다’는 스토리를 탄생시킨 거죠. SNS부터 웹사이트, TV 광고까지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엄청난 세계관을 창조한 이 캠페인 덕에 ‘키무라’는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다행이 히요코짱의 무서운 일탈은 2018년, 치킨라멘 60주년을 맞은 이벤트성 해프닝이었다고 하네요. (휴…!) 지금은 다시 성실하게 치킨 라멘과 닛신식품을 소개하는 밝고 귀여운 히요코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오사카 이케다에 히요코짱을 가장 가까이 만나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해서 시티호퍼스가 한 번 찾아가 보았어요. 바로 닛신 식품의 ‘컵누들 뮤지엄’입니다.
마이 컵누들 팩토리 : 발명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시티호퍼스
컵누들 뮤지엄은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이자, 자신만의 치킨 라멘과 닛신 식품의 대표 컵라면인 컵누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소예요. 그럼 먼저 박물관을 둘러보며 인스턴트 라면의 발명기를 알아볼까요?
때는 1958년, 컵누들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과 똑같은 허름한 창고에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했어요.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는 섬유 사업, 영사기 제조, 학교 설립 등 다양한 일에 뛰어들었던 천생 사업가였어요. 하지만 식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데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사로 일하던 신용협동조합이 파산해 직장과 전재산을 잃은 상태였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발명이 전 세계의 식문화를 바꿔 놓은 거예요.
안도 모모후쿠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창고를 재현한 모형 ⓒ시티호퍼스 / 1958년 출시된 치킨 라멘 ⓒ닛신 식품
당시 일본은 종전 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한 그릇의 라면을 구하기 위해 거리에 줄을 섰죠. 미국발 구호 물자인 밀가루가 있었지만, 일본인에게 익숙지 않은 빵이나 비스킷 형태로 배급됐어요. ‘이 밀가루를 사용해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면류를 보급하면 안 되는 걸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실행으로 옮겼어요.
안도는 가정에 상비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성이 높고, 요리하는 데 노력이 들지 않는 서민의 식량을 만들고 싶었어요. 연구에 매진하던 그에게 힌트를 준 건 아내가 부엌에서 요리하던 튀김이었어요. 재료를 튀기면 수분이 빠져나가며 바삭해지잖아요. 면을 튀겨도 마찬가지였고, 이 면을 완전 건조하면 반 년을 놔둬도 부패하지 않았죠. 게다가 수분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뜨거운 물이 스미면 원래의 부드러운 상태로 돌아갔어요. 1년 만에 완성한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그 대단한 편리함으로 ‘마법의 라면’으로도 불렸던 닛신의 1호 제품 ‘치킨 라멘’이었습니다.
40대 후반,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 같던 시기에 초라한 집 마당에서 창업해 대박을 낸 안도 모모후쿠.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그에게 장수 비결을 물으면 매일 점심에 먹는 치킨 라멘이라고 답했다고 해요. 본인이 일군 성과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늦은 나이에 성공을 이룬 그는 항상 ‘발명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컵누들 뮤지엄은 그의 정신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치킨 라멘 팩토리’에서는 면 반죽, 삶기, 양념하기, 튀기고 말리기까지 인스턴트 치킨 라멘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인기가 많은 건 닛신의 대표 컵라면인 ‘컵누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할 수 있는 ‘마이 컵누들 팩토리’예요.
마이 컵누들 용기 자판기 / 시티호퍼스 컵누들 ⓒ시티호퍼스
500엔(약 5천원)을 내고 자판기에서 빈 컵누들 용기를 뽑으면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아 마커로 용기를 꾸밀 수 있어요. 이때 인기 만점인 히요코짱 그림도 나눠 주니 따라 그려도 되고, 본인만의 컵누들 용기를 만들어도 된답니다. 용기를 꾸미는 시간은 병목 현상을 완화해주는 방안이기도 해요. 내용물을 채우기 위해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용기를 꾸며야 하니 마냥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의 시간이 되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livejapan
컵누들의 내용물로는 기본적인 면, 스프, 다양한 토핑이 준비되어 있어요. 스프는 컵누들의 다양한 맛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여섯 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어요. 토핑은 귀여운 히요코짱 얼굴 모양 어묵, 김치, 치즈, 계란 등의 12가지 중 네 가지를 고르면 돼요. 가능한 조합이 무려 총 5,460가지인 데다, 스스로 디자인한 컵에 담기니 누구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체험이에요.
직원이 실제 컵누들 공장에서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컵을 밀봉하고, 수축 포장 해준 뒤 안전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공기 패키지에 넣으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컵누들이 완성돼요. 서툴어도 상관 없고, 틀에 갇힐 필요도 없죠. 안도 모모후쿠가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발명했듯, 발명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까요.
최초의 컵누들 : 먹는 방식을 혁신하다
컵누들 뮤지엄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닛신 컵누들 ⓒ시티호퍼스
닛신 식품은 인스턴트 라면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비닐에 담긴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컵라면의 인기가 봉지 라면의 인기를 추월하기 시작했거든요. 2021년 세계라면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컵라면 생산량 비중은 66.3%로, 인스턴트 봉지 라면 생산량의 2배 가량이었어요. 특히 닛신의 컵라면은 세계 각지 80개국에 수출해 2021년에 총 판매량이 무려 500억 개를 돌파할 정도였죠.
ⓒ세계라면협회
사실 컵라면의 발명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어요. 1966년, 그러니까 치킨 라멘이 출시된 지 8년 후 치킨 라멘을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안도 모모후쿠가 떠난 출장에서요.
그는 유럽과 미국을 순회했는데, 미국의 한 슈퍼마켓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어요. 한 매니저가 인스턴트 라면을 부숴 작은 크기로 만들고는 종이컵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포크로 먹고 있었던 거예요. 다 먹은 후에는 컵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 버렸어요. 인스턴트 라면만 해도 복잡한 조리가 필요 없는 간편한 음식이었는데, 그 과정을 더 간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일회용 종이컵으로 조리도구와 용기를 합쳐 극강의 편리함을 추구했던 거죠.
이때 안도 모모후쿠는 라멘을 바라볼 때 고정관념이 작용했음을 깨달았어요. 그에게 라멘은 당연히 그릇에 내어 젓가락으로 먹는 번듯한 음식이었으니, 보관과 조리는 혁신해도 먹는 방식까지 바꿀 생각은 하지 못했었죠. 하지만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접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치킨 라멘은 그저 ‘아주 간편한 식사’였어요. 그러니 더 간편해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닛신 식품
일본으로 돌아온 후, 닛신 식품은 바로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어요. 제품을 보호하는 포장, 제품을 요리하는 조리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품을 먹는 식기. 이 세 가지의 기능을, 한 손에 들 정도로 가벼운 ‘컵’ 하나로 대체한 새로운 발상의 제품이었죠.
세상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폴리스티렌 폼 성형에 어려움이 있어 미국 기술을 도입해야 했어요. 또 윗부분은 넓고 아랫부분은 좁은 용기에 딱 맞는 면을 넣느라고 고생을 하기도 했죠. 결국 용기에 면을 넣는 것이 아니라, 면 위에 용기를 씌우는 발상의 전환으로 문제를 해결했죠. 1971년,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초의 컵라면, ‘컵누들’이 출시되었어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유통에 있었어요. 한 손에 들고, 서서 먹는다. 미국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일지 몰라도, 당시 일본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매너 없는 행동이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게다가 당시 닛신의 컵누들은 직접 용기를 제작하고 개발한 탓에 인스턴트 봉지라면 가격의 4배 정도에 출고 되었어요. 1971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100엔(약 1,000원 가량)이었으니 얼마나 비싸게 느껴졌을지 알만 하네요. 전국의 소매상들은 ‘비싸고 버릇 없는’ 컵누들 재고를 떠안을까 두려웠고, 컵누들을 팔지 않으려 했어요.
ⓒ닛신 식품
그렇다고 5년 간 공들여 개발한 컵누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먹는 방식’을 혁신했으니,이젠 ‘파는 방식’을 혁신할 때였죠. 아무도 팔아 주지 않는 제품은 직접 파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닛신은 자판기를 선택했어요. 평범한 자판기가 아니라, 사자마자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이 나오는 자판기였어요. 어른들은 예의 없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 참신한 자판기는 특히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 1년 만에 전국에 20,000대가 설치되었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긴자에서 진행한 시식회에서는 하루에 20,000인분이 팔릴 정도였어요.
이후 일본 혁명 무장단체의 폭동을 제압하기 위해 산장을 포위하던 도쿄 경시청 기동대원들이 선 채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송출되면서 컵누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미국, 브라질, 싱가포르, 홍콩, 인도 등에 진출하며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어요. 인스턴트 치킨 라멘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만족하고 멈출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발명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듯이, 발명의 영역도 무궁무진했죠. 이 덕에 닛신은 가장 간편한 한끼를 만들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거예요.
역발상 마케팅 : 마케팅으로 외면받던 맛을 발굴하다
흑화한 히요코짱이라는 어마무시한 컨셉의 캠페인에서 예측 가능했겠지만, 닛신 식품은 특색 있는 마케팅으로 유명해요. ‘치킨 라멘’과 ‘컵누들’이 틀을 깨고 태어난 세계 최초의 발명인 만큼 특히 고정관념을 부수는 재치 있는 광고를 자주 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죠. 아래의 광고 포스터가 그 예시 중 하나인데요.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 ⓒ컵누들 트위터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 ⓒ컵누들 트위터
시작은 컵누들 신상, ‘밀크 시푸드’ 맛의 홍보였어요. 조금은 독특할 것 같은 이 맛에 거는 기대가 컸는지, 광고주는 열정이 넘쳤죠. 상무에, SNS 홍보 팀에, 서로 원하는 게 많았어요. 두 눈을 빛내는 광고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던 디자이너… 결국 원하는 다 때려 넣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괴작이 탄생해 버렸군요. 광고 에이전시의 고충을 담은 이 광고는 사람들을 빵 터지게 만들면서도, 수많은 수정 사항을 읽으면서 새로운 맛의 특징과 매력을 전부 파악하도록 한 수작이에요.
1958년부터 현재까지, 닛신 식품에서 출시된 전 제품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 터널’ ⓒ시티호퍼스
‘컵누들 밀크 시푸드 맛’에서 알 수 있듯이 치킨 라멘과 컵누들에서 시작한 닛신 식품은 현재 수많은 제품 라인과 종류를 가지고 있어요. 꾸준히 신제품이 출시되어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죠. 1958년부터 지금까지 닛신 식품에서 출시되었던 모든 제품의 계보를 컵누들 뮤지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여러 제품 라인이 점점 발전해오며 탄생한 서로 다른 패키지 800개 가량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중 현재 판매 중인 제품 종류도 거의 200개 정도 돼요.
그러다 보니 닛신 식품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다양한 제품을 많은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거예요. 워낙 제품 라인이 많고, 같은 이름을 내세우는 라인 안에서도 맛의 종류가 수십 가지이니 가장 잘 팔리는 맛 서너 개를 빼고는 진열도 하지 않는 매장이 많으니까요. 물론 제품의 개수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새로운 맛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만족 시키기 위해 신제품은 계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고, 결국 ‘수많은 새로운 제품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라는 피할 수 없는 고민으로 귀결돼요.
그래서 닛신은 주특기인 마케팅을 통해 맛을 발굴하기로 했어요. 이미 소개한 광고 두 가지도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는데요. 닛신의 ‘맛 발굴’의 정점에는 컵누들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맛 여덟 가지가 있답니다. 가장 기본적인 간장, 맑은 소금 국물의 시오, 시원한 시푸드, 독특한 매력의 카레, 치즈 카레, 진한 돼지뼈의 돈코츠, 구수한 된장 맛 미소, 감칠맛 나는 칠리 토마토예요.
2021년은 컵누들이 50주년을 맞는 해였어요. 그리고 외면 받아왔던 여러 컵누들을 세상에 알릴 기회이기도 했죠. 그래서 닛신 식품은 컵누들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광고 캠페인을 펼쳤어요. 그 중에서도 돋보인 것이 두 개의 컵누들 맛을 합친 ‘컵누들 슈퍼 합체 시리즈’였어요. 악당이 쳐들어와 위기에 처한 세상을, 스테디셀러 컵누들들이 힘을 합친 변신으로 막아낸다는 컨셉이었죠. 가능한 총 28개의 조합 중 가장 잘 어울리는 궁합을 찾아내고, 최적의 스프 및 재료 비율을 계산해 합체 시리즈 4종을 출시했어요.
ⓒ컵누들 공식 트위터
패키지 디자인 또한 반으로 나눈 형태였죠. 그리고 컨셉이 ‘합체’인 만큼 기존 컵누들 종류 두 개의 패키지를 이용해 누가 봐도 멋진 히어로 피규어를 만들어 냈어요. B급 감성이 재미를 주면서도 어린 시절 가면 라이더, 슈퍼 레인저 같은 만화를 보고 자랐다면 설렐 수 밖에 없는 캠페인이었어요. 게다가 새로운 맛을 출시한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조합을 제시하니 평소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여러 맛에도 주목하고 체험하게 만들었죠.
이듬해에는 아예 이 여덟 가지 종류의 컵누들을 가지고 ‘여덟 가지 맛’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해 화제가 되었어요.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고 영상 덕분이었는데요. ‘최애’ 맛의 광고를 똑똑히 지켜보라는 멘트와 함께 화면을 9분할 해 8가지 맛에 대한 광고를 한꺼번에 송출 했거든요.
TV에서 본다면 혼란스러울 광고였지만, 인터넷에서는 반응이 뜨거웠어요. 사람들이 재미있는 각각의 광고를 자세히 보기 위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기 시작했던 거예요. 외면 받던 맛을 발굴하는 똑똑한 마케팅 전략 덕분에, 몇 가지 맛 밖에 진열되어 있지 않았던 편의점 매장에 여덟 가지 맛이 전부 진열된 경우가 많이 생겼죠.
저 세상의 맛, 우주로 간 컵누들
2007년, 96세로 세상을 떠난 닛신 식품의 회장 안도 모모후쿠. 90세가 넘은 노년의 그에게는 마지막 꿈이자 목표가 있었어요. 바로 그가 처음 발명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던 인스턴트 라면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었죠. 그러나 국물이 있는 면 요리를 우주에서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무중력 상태에서는 면발과 국물이 사방으로 튈 가능성이 높은데, 우주선 설비에 튈 경우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우주 정거장에서 스페이스 람을 즐기는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 ⓒNASA/JAXA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했듯 그는 포기를 몰랐어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했죠. 마침내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를 태운 채 2005년에 힘차게 출발한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 호에는 닛신이 발명한 네 가지 맛의 우주 라면 ‘스페이스 람(Space Ram)’이 함께 타고 있었어요. 면발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특수 코팅을 해 모양을 유지하게 했죠. 결과는 성공이었어요.
스페이스 람은 NASA와 함께한 연구로 만든 특별한 라면이었어요. 하지만 그 도전 정신의 원형은 처음 인스턴트 라면을, 그리고 컵라면을 시도했던 안도 모모후쿠로부터 시작됐죠. 오사카 이케다 지역의 초라한 뒷마당에서 광활한 우주까지 겁 먹지 않고 비행했던 닛신의 정신이었죠. 우주에 다녀온 닛신의 컵라면은, 이제 또 어떤 새로운 곳을 누비게 될까요?
Refe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