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 하나로 미디어 그룹을 만든 저널리스트 지망생의 전략

아에루

2023.07.28

제조, 소매, 컨설팅, 교육, 호텔, 테마파크 등. 수십년 된 대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아니에요. 2011년에 시작한 ‘아에루’가 약 10여년 동안 전개해 온 사업들이에요. 하나의 분야에서 오랜시간 해도 잘하기 어려운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컬래버레이션으로 사업을 키워왔기 때문이에요. 다만 컬래버레이션의 대상이 독특해요. 잘 나가는 회사들이 아니라, 점점 외면 받는 전통 제품 혹은 장인들과 협업을 하죠. 1990년 이후 4분의 1 이상의 장인들이 사라져버린 전통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예요. 취지야 좋은데, 그렇다면 아에루의 본업은 무엇일까요?


아에루의 대표는 의외의 답을 내놓아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업의 정의예요. 그런데 듣고 나면 설득력 있어요. 아에루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아에루 미리보기

 전통을 깨우러 전국을 다니는 컬래버레이션의 탄생

 일본의 문화를 담아 일생의 물건을 파는 가게

 전통을 알리려는 회사가 ‘사장님 대출’을 하는 이유

 전국에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을 심다

 스스로 미디어 그룹이 된 저널리스트 지망생



2019년,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움직이는 건축물(Moving Architecture)’이 등장했어요. 건축물이란 땅 위에 정착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움직일 수 있다니, 대체 어떤 건축물일까요? 게다가 일본의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인 구마 겐고의 작품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죠. 그의 모든 건축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디자인한 움직이는 건축물은 신발이었어요. 호텔, 도서관, 경기장 등 대형 건축물에 비해 스케일이 턱없이 작아진 신발을 디자인한 거죠. 패션업 종사자도, 신발 디자이너도 아닌 건축가가 만든 신발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그 전에, 구마 겐고는 어쩌다 신발을 설계하게 되었을까요?


이번 작품은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Asics)의 의뢰로 시작됐어요. 컬래버레이션이었죠. 신발 ‘메타라이드 아무(METARIDE AMU)’ 디자인이 공개되던 날, 사람들의 물음표는 곧장 느낌표로 바뀌었어요. 스케일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작은 신발 안에 구마 겐고의 철학과 색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거든요. 물론 아식스의 정체성도 그대로 남아있었고요.



야타라아미 기법을 활용한 동시에 측면에 asics 스트라이프는 그대로 남겨둔 디자인. 나무에서 파생된 섬유 소재인 셀룰로스 나노섬유를 미드솔 폼에 사용함 ⓒasics


메타라이드 아무의 디자인 모티브는 일본의 전통 죽세공 기법 ‘야타라아미’예요. 대나무를 쪼개서 잘라낸 뒤 엮어내는 기법이죠. 구마 겐고는 예전부터 면이 아닌 선을 사용해서 공간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빛이나 바람을 끌어들이고 싶어 했어요. 야타라아미는 그것을 실현하는 알맞은 수단이었고요. 마찬가지로 신발을 디자인할 때도 선을 활용해서 내추럴한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식스의 스트라이프 마크를 발전시킨 패턴을 만들었죠.


이쯤 되면 생기는 의문이 있어요. 아식스는 왜 건축가에게 신발 디자인을 의뢰했을까요? 마케팅 목적의 컬래버레이션이라면 운동선수나 패셔니스타 등 선택지가 다양했을 텐데 말이에요. 구마 겐고는 지금까지 신발을 디자인한 경험도 없고요. 게다가 건축과 신발은 딱히 접점이 없어 보여요. 이때 구마 겐고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운동화와 건축에는 공통분모가 있다고요. 건축이 대지와의 연계성이 중요한 것처럼, 인간도 대지와 잘 연결되어야 편안함을 느끼는데 신발이 그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원래부터 신발에 관심이 많았죠.


막상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하니 건축과 신발은 3가지 측면에서 접점이 더 또렷했어요. 먼저 접근 방식. 건물을 설계하려면 인간의 신체구조나 움직이는 방식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인체공학적 접근은 신발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요. 다음은 설계 사상. 구마 겐고는 평소에 건축이 사람의 의복이나 신발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건축은 너무 크고 딱딱해서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발을 감싸는 신발은 건축의 미래상에 가까웠어요. 마지막으로 소재. 사회가 건축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자연 소재가 중요해졌는데, 그가 사용하고 싶었던 나무 섬유질인 ‘셀룰로스 나노 섬유’를 아식스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죠. 이렇게 보니 신발 디자이너와 건축 디자이너가 ‘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구마 겐고의 말이 이해가 가요.


결국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였던 아식스와 구마 겐고의 컬래버레이션은 이유 있는 만남이었어요. 접근 방식, 설계 사상, 소재까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히 기업과 건축가의 만남이기보다는 철학과 철학의 만남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이처럼 중심 축만 튼튼하다면 얼마든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게 컬래버레이션이 가진 힘이에요. 교토에는 이 곱셈의 힘을 극대화한 기업이 있어요. ‘버무리다’라는 뜻의 아에루(Aeru)예요. 옛 선인의 지혜와 현 시대의 감각을 버무려 미래 세대에게 진짜 일본을 전해주겠다는 회사예요. 그렇다면 아에루는 어쩌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많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전통을 깨우러 전국을 다니는 컬래버레이션의 탄생

아에루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리카 야지카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전통과 문화를 동경하며 자랐어요. 일본 장인이 만든 물건이나, 그걸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좋아했죠. 그런데 매번 전통문화와 기술에 감탄하면서도, 왜 더 빨리 접할 기회가 없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통 산업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고는 대학생 때 아에루를 창업해서 도장깨기하듯 잠들어가는 일본의 전통을 깨우기 시작했죠. 이때 단순히 전통을 알리는 게 아니라, 과거의 지혜를 현재의 감성과 버무려서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그녀는 이러한 아에루의 철학과 접근 방식을 로고에도 담았어요. 아에루 로고는 모양이 지역별로 바뀌는데요. 제품을 만드는 장인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칠보 무늬 원의 위치가 달라져요. 아에루가 일본의 혼모노(本物), 진짜 물건를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나타내는 거예요. 또 다른 의미도 있어요. 이 모션 로고는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을 상징해요. 갑자기 웬 아이냐고요? 리카 대표는 아에루를 창업하면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용할 수 있는 ‘0세부터의 전통 브랜드’를 지향했거든요.




도쿠시마, 에히메, 후쿠오카, 아키타 등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아에루의 로고 ⓒaeru


전통을 지키고 전해야 한다는 것엔 누구나 공감해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그래서 리카 대표는 이 문제를 독특하게 풀어나가요. 기업명처럼 진짜 ‘버무리기’를 시작했죠. 전통을 중심축으로 여러 가지 키워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거예요. 어떤 키워드와 만나느냐에 따라 아에루의 업종은 계속해서 달라져요. 소매업, 호텔업, 교육업, 컨설팅업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업의 경계를 넘나들어요. 그렇다면 아에루는 어떻게 일본 전역에서 잠들어가는 전통을 깨우고 돌아다니는 걸까요?



일본의 문화를 담아 일생의 물건을 파는 가게

아에루의 첫 프로젝트는 ‘0세부터의 전통 브랜드’였어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자국 전통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일본 전통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목표했죠. 그렇게 처음 만든 제품이 출산 축하 세트였어요. 도쿠시마현의 쪽염색 장인이 만든 아기 배내옷, 양말, 페이스타월을 오동나무 상자에 담은 거예요.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기법으로 30회 정도 염색을 반복하는데, 이렇게 하면 재팬 블루(Japan Blue)라고 불리는 짙은 파란색이 만들어져요. 식물성 염료라 아기에게 입히기에도 걱정이 없고요.



ⓒ시티호퍼스


또한 그릇과 컵도 출시했는데요. 제품의 컨셉이 명확해요. ‘흘리기 어려운’ 시리즈예요. 아기는 힘 조절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서 숟가락으로 밥을 먹기가 어려워요. 리카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해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릇 안쪽에 살짝 돌출된 테두리를 넣었죠. 이렇게 하니 숟가락이 걸려 음식을 더 쉽게 뜰 수 있어요. 음식이 그릇 밖으로 넘어가지도 않고요. ‘흘리기 어려운 그릇’을 사용하면 아기가 숟가락질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어 가족의 식사 시간이 한결 편해지죠.



ⓒaeru


‘흘리지 않는 컵’ 시리즈도 있어요. 아이는 물을 마시다가 컵을 엎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아에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컵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컵에는 손잡이가 없어요. 이상하죠. 컵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양쪽에 손잡이를 붙여도 모자랄 판에, 반대로 손잡이가 없다니요. 대신 컵에 단차를 두었어요. 양손으로 컵을 쥐었을 때 손가락이 단차에 걸려서 컵을 놓치지 않도록이요. 여기에는 한 가지 의도가 더 있어요. 이 컵을 양손으로 정성스럽게 쥘 때마다 물건을 소중히 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게 한 거예요. 게다가 컵 사이즈도 세심하게 조정해, 음료를 마실 때 컵이 아이의 눈을 가리지 않아요.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 불안해지는 아이의 특성을 고려해 스스로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디자인했죠.


그런데 흘리기 어려운 그릇과 컵을 보다 보면 의아한 점이 생겨요. 대체로 유아용 물건은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게 실리콘이나 플라스틱 같은 소재로 만들거든요. 아에루 제품은 그 반대죠. 물론 쉽게 놓치지 않게 디자인했지만 유리, 흙 등의 재료로 제작해 떨어뜨렸을 때 깨질 확률이 높아요. 그렇다면 왜 아이에게 깨질 수 있는 것을 사용하게 할까요?


"만약 그릇을 잘 다루지 못해서 깨져버렸다고 해도, 거기서 ‘이렇게 하면 깨져버리는구나’, ‘물건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길게 보면 그릇이 깨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험입니다."

- 아에루 홈페이지 중


관점의 전환이에요. 아이가 물건을 깨뜨리면 그 자리에서 혼내거나 그릇을 버리지 말고, 깨진 이유를 생각하게 하고 고쳐 사용함으로써 물건 다루는 방식을 알려주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아에루는 깨진 제품들을 수선해주는 서비스, 아에루 오나오시(Aeru Onaoshi)를 오픈했어요. 15세기부터 이어져 오는 도자기 수리 방식인 ‘킨츠기’와 옻칠을 다시 하는 일본의 수선 문화를 서비스로 만들었어요. 전통 장인이 만든 진짜 물건을 평생 사용해달라고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예요. 이렇게 아에루는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통해 전통적, 교육적, 정신적 가치까지도 함께 전달해요.



ⓒ시티호퍼스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통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아에루의 제품에는 한 가지 반전이 있어요. 바로 제품의 사용 연령 제한이 따로 없다는 거예요. 갓난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니까요. 디자인할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도 ‘이 상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사용할 수 있는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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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을 온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예를 들어 흘리기 어려운 그릇의 경우에 어른들은 술안주용 그릇이나 작은 화분으로 사용하고, 흘리기 어려운 컵의 경우에 어른들은 사케나 차 마시는 용도로 쓸 수 있는 식이에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용한 그릇이나 컵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인생을 함께 하는 ‘일생의 물건’이 되길 바라는 거예요.



전통을 알리려는 회사가 ‘사장님 대출’을 하는 이유

0세부터의 전통 브랜드로 시작한 아에루의 사업은 전국 장인과 협업을 하면서 성장했어요. 그런데 창업 4년 차인 2014년, 리카 대표는 돌연 아에루 리브랜딩(Aeru Re-branding) 사업을 시작했어요.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리브랜딩을 도와주는 일종의 컨설팅 사업이죠. 제품 라인업을 늘려서 회사를 더 키울 수도 있을 텐데, 역량을 다른 기업에 쏟아 붓겠다니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아에루는 창업 후 전국 각지의 장인을 만나면서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을 숱하게 목격했어요. 지역에 기반을 둔 매력적인 전통 산업이 사라지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람이 떠나고, 결국 지역이 쇠퇴하죠. 당연히 전통문화도 소멸되고요. 아에루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지역의 전통 있는 회사나 브랜드가 가진 진정한 매력을 세상에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자처한 거예요. 그래서 사업을 하면서 몸소 터득한 무형의 지식과 경험을 아에루 리브랜딩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볼게요. 할아버지가 1905년에 설립한 안경점 ‘마코토 안경’을 물려받았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자에게는 숨어있는 철학을 찾아줬어요. 기술과 장점을 재확인하고, 언어화한 뒤, 컨셉을 강화시켰죠. 그뿐 아니에요. 소비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드문 대표를 위해 아에루의 매장에서 전시 및 판매를 하고 토크 이벤트도 개최했어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철학이나 본질, 기술을 지금의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정돈하는 일은 아에루가 늘 해오던 일이에요. 달라진 건 딱 하나. 그 역량을 다른 기업에 사용한 거예요.


아에루가 팔 수 있는 무형자산은 지식과 경험만이 아니에요. 오랫동안 일본의 전통을 재해석하며 자연스레 감성과 감각이 발달했는데요. 그래서 전통을 통해 감성과 감각을 키우는 법을 팔기 시작했어요. 아에루 스쿨(Aeru School)이라는 사업으로요. 아에루 리브랜딩이 기업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일이라면, 아에루 스쿨은 사람을 키우는 인재 육성 코스예요. 교육업이죠.



ⓒ시티호퍼스


아에루 스쿨은 기업이나 교육기관, 개인 등을 대상으로 관찰하는 힘, 언어화하는 힘, 철학하는 힘을 기르는 강연과 워크숍을 열어요. 일본의 전통을 접하는 과정 속에서 미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크리에이티브한 인재, 우뇌형 인재로 성장시키기에 적합하죠. 리카 대표의 학창 시절에는 전통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나 계기 자체가 없었다고 하니, 구조적 아쉬움을 직접 해소한 셈이에요. 현시대가 필요로 하는 요소를 일본 전통에서 찾아 제시하는 시대 간 컬래버레이션이기도 하고요.


적극적으로 무형자산을 판매하던 아에루는 2020년부터 새로운 실험에 돌입해요. 그렇다면 경험, 지식, 감성, 감각을 판매한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장님 대출’이에요. 그동안 아에루를 통해 쌓았던 모든 노하우를 다 가지고 있는 리카 대표를 직접 빌려주기로 한 거예요. 이 기획은 ‘자문의 대가를 꼭 돈으로 받아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원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대가를 꼭 돈으로 받을 필요는 없으니 자유롭게 만나보자고 제안했죠.


매년 온라인으로 사연을 응모 받고 나면 아에루의 직원들이 직접 대상자를 선정해요. 그럼 리카 대표가 현장에 찾아가 컨설팅을 하고요. 예를 들어 전통 무용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뢰를 받으면, 다음 세대에게 전통 무용을 계승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줘요. 대가는 돈이 아니라 무용 체험으로 대신하고요. 이처럼 전통을 지키고 되살리는 방법과 수단에는 제한이 없어요.


아에루가 준비한 다음 계획은 더 기대돼요. 과학과 컬래버레이션하는 아에루 라보(Aeru Labo)를 준비 중이거든요. 장인의 전통 기술에 현대의 과학이 닿으면 또 어떤 새로움이 탄생할까요? 아에루가 사업을 하며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과거와 현재의 결합’이 여기서도 이어지는 거예요. 함께 연구할 기업을 모집 중인데요. 아에루가 곧 선보일, 과학의 옷을 입은 전통이 벌써부터 궁금해져요.



전국에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을 심다

다음 세대에게 일본의 전통을 알리고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각종 사업을 펼쳐온 아에루. 처음엔 물건을, 다음엔 노하우를 판매하며 스케일을 키워왔어요. 아에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죠. 전통과 현대가 만난 라이프스타일을 팔기 시작한 거예요. 일본의 전통문화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어떨까요? 막연하게 고루할 거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매력을 요즘의 감각으로 버무리는 것이 아에루의 일이니까요.


우선 라이프스타일의 거점으로 삼은 장소는 지역의 호텔과 료칸이에요. 원래 있는 호텔이나 료칸의 객실 하나를 아에루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아에루 호텔(Aeru Hotel)이라 이름 붙였죠. 이곳에서 숙박하는 고객은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어요. 벌써 교토, 나라, 나가사키 등 전국에 7곳의 객실이 만들어졌어요.


아에루 호텔은 단순히 방을 리모델링하는 것과는 달라요. 먼저 장소가 정해지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 등을 깊이 있게 조사해요. 무엇을 보여줄지 스터디하고 난 후 디자인 컨셉을 확정하고요. 그러고는 지역의 장인과 함께 객실을 만들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직접 선정한 지역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이를 설명할 사람이 필요하죠. 그래서 직원 육성까지 도맡아요. 단순히 사업군을 확장시키려는 욕심이 아니라 전통문화의 발신지를 전국에 차곡차곡 심어두려는 진심이 느껴져요.



교토 Umekoji Potel의 객실을 새롭게 꾸민 공간. 교토의 삼나무로 침대와 천을 꾸몄어요. ⓒaeru


아에루 호텔은 아에루 룸(Aeru Room)이라는 공간 기획 사업의 일환이에요. 이 사업을 통해 호텔의 객실 말고도 오피스나 주택 등 일상의 공간도 바꿔나가죠. 매장, 학교, 호텔, 사무실, 거주 공간까지 삶의 공간 속에 차근차근 침투하고 있는 거예요. 자세히 살펴보면 아에루가 진행하는 공간 사업은 교육 사업인 아에루 스쿨과도 연관성이 있어요. 아에루가 설계한 공간에서 일본 전통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전통을 배울 수 있고 감각이 꽃피거든요.


아이부터 어른까지, 학교부터 기업까지 골고루 만나왔으니 이쯤이면 아에루의 갈증도 해소됐을까요? 이번 행보를 보면 아직인 거 같아요. 아에루는 2021년에 숲 하나를 확보했거든요. 사토야마라는 지역의 숲을 재정비한 후 새로운 형태의 테마파크를 열기 위해 아에루 사토야마(Aeru Satoyama)를 만들었어요. 전통을 파고들던 아에루가 자연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어요.


첫째, 문화의 원점은 자연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전통 상품의 원재료는 대부분의 경우 산을 비롯한 자연에서 공급되는데 어느 때부턴가 많은 원재료가 해외에서 조달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옻칠만 해도 전체의 97%가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었죠. 점점 옻이 사라지자 일본 내 옻의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직접 황폐한 산림을 재정비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다고 전통 상품의 원재료 공급을 위해서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 것만은 아니에요. 둘째 이유는, 원론적일 수 있지만 자연이 그 자체로 문화여서예요. 일본의 기후와 풍토에서 자란 자연이야말로 일본 전통문화의 원천이죠. 문화와 생활 양식은 자연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 자연을 보존하지 않으면 관련된 문화도 소멸돼요. 그래서 아에루 사토야마는 숲을 정비하는 동시에 자연 속에서 보내는 여가 생활을 제안해요. 숲속에서의 음악회, 산 속 채소 찾기, 숲속 탐험 등의 이벤트를 기획해서 일본의 사계절을 즐기는 마음을 심어줄 계획이죠.



스스로 미디어 그룹이 된 저널리스트 지망생

물건에서 노하우,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경계 없이 사업을 펼쳐나가는 아에루의 본업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지난 10여 년간 전개해 온 사업들이 다양하다 보니 소매업, 서비스업, 컨설팅업, 교육업, 숙박업 등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죠. 누군가는 너무 많은 사업군을 다루는 건 아닌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고요. 자칫 기업의 정체성이나 본질이 흐려져선 안되니까요. 그렇다면 리카 대표는 아에루를 뭐라고 정의할까요?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아요. 놀랍게도 위에 나왔던 후보군 중에 답은 없었죠. 그녀는 아에루를 ‘전통문화의 매력을 알리는 미디어’라 불러요. 소매업이 아니라 저널리즘업으로 정의내린 거예요.


"아에루는 소매업이 아니라 저널리즘업입니다. (중략…) 아에루에 가면 전국의 장인이 만든 물건을 만날 수 있어요. 전통과 만나는 입구를 만들어 낸 셈이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바꾸어 말하면, 지역과 장인의 매력을 편집하고 발신하는 거예요. (중략…) 전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언론인 집단이니, 어느 사업과도 연결될 수 있죠."

-〈Soléna〉인터뷰 중


아에루 뒤에 새로운 키워드가 붙을 때마다 업종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시선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에요. 결국 아에루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과 컬래버레이션하면서 사업을 펼쳐 나가지만, 늘 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로 전통의 매력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편집해서 다음 세대로 연결하는 일이요.


학창 시절 리카 대표의 꿈은 일본의 전통을 알리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 때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했어요. 사업가가 되어 다양한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한결같이 전통을 찾아내고, 편집하고, 알리는 일을 해왔으니 일의 본질은 저널리스트와 다르지 않아요. 결국 그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거나 다름 없죠. 그녀가 아에루를 통해서 그토록 찾아내고 싶었던 것은 혼모노本物예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품이나, 잠깐 뜨고 지는 유행이 아니라 ‘진짜 물건’ 그리고 ‘진짜 일본’이었죠. 그러니 혼모노를 만나보고 싶다면 아에루가 그린 궤적을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요. 그곳에 진짜 일본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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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아에루 공식 홈페이지

 <和える-aeru->, 矢島里佳, 早川書房

 建築家・隈研吾の“最小の建築”ができるまで。隈氏とアシックスが開発を通じて都市の未来を見つめた。, Asics

 Portraits Kengo Kuma, Fashion post

 INSPIRED BY JAPANESE BAMBOO WEAVING, KENGO KUMA’S SHOES FOR ASICS ARE LIKE ‘MOVING ARCHITECTURE’, SARANG SHETH, YANKO DESIGN

 Kengo Kuma designs his first ever trainer for ASICS, Jennifer Hahn, Dezeen

 隈研吾が設計に関わった〈国立競技場〉がまもなく完成、というタイミングで〈アシックス〉とのコラボシューズが登場した! 建築とシューズデザインに共通する哲学とは?, Naoko Aono, Casa Brutus

 文化が経済を育て、経済が文化を育む。文化と経済が両輪で回っている社会を目指す「株式会社 和える」【これからの1000年を紡ぐ企業】, 矢島里佳, SILK

 株式会社和える-aeru-代表の矢島里佳さんが語る20年後の未来, 大崎 博之, Soléna

 「なぜ今、SATOYAMAなのか?」〜世界からも注目を集めるSATOYAMAと、日本の伝統のつながりとは〜, 和える,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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